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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10

[대항해시대] 6장 - 노예무역: 근대 세계의 비극 노예무역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널리 알려진대로 아프리카의 희생을 강조하는 것과, 아프리카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소위 '수정주의' 견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연하면, 두번째 견해는 유럽의 '죄악'을 면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피해만 강조하다 아프리카인들이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오히려 진보적인 것이다. 아프리카 인들 역시 모든 면에서 역사의 중요한 주체였지만, 이 주장의 위험성 또한 주지해야한다. 아프리카 내부의 노예제와 노예교역 토지 소유가 우선인 다른 문명과 달리 아프리카는 사람의 소유가 우선이었다. 즉, 어떤 땅이든 누군가가 농사를 짓고 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땅을 경작하는 것이 허용된다. 지배자는 '사람'을 지배함으로써 생산물을 차지하였고, 아프리카 사회에.. 2023. 11. 7.
[대항해시대] 5장 - 화폐와 귀금속의 세계적 유통 화폐, 귀금속, 근대세계 콜럼버스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이 산출되어 유럽으로 흘러들어 온 가운데 많은 양은 유럽 내에 잔존했고 이것이 이 지역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 이는 특히 상공업자들의 이윤을 높여서 유럽 경제의 발전을 자극했다. 은의 일부는 아시아로 들어갔는데 아시아 산물에 대한 유럽의 수요는 크지만, 그 반대는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 등을 거쳐 많은 양은 최종적으로 중국에 흘러들어 갔으며, 중국에 유입된 귀금속은 도로 나가지 못했다. 말하자면 중국은 '흡입 펌프', '귀금속의 무덤'이 되었던 것이다. 크게 보면 이 그림이 맞을 수 있지만, 세밀하게는 여러 부분이 틀렸거나 모호해진다. 첫째, 은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갔지만, 금은 오히려 아시아에서.. 2023. 4. 15.
[대항해시대] 4장 - 근대적 폭력, 폭력적 근대 군사혁명 마이클 로버츠에 따르면, 유럽사에서 사상 유례 없이 전쟁이 빈번했던 16-18세기에 일어난 군사혁명을 크게 네가지로 정리하는데, 첫째, 총포류가 창을 대신하는 무기상의 변화, 둘째, 군대 규모의 엄청난 증대, 셋째, 대규모의 복합적 전술의 사용, 넷째, 사회에 대한 군대의 영향 증가이다. 초창기 화승총은 장전에 몇분이 소요되고, 유효사거리도 100미터 정도에 불과해서, 1분에 10발, 유효사거리가 200미터에 달하는 궁수에 비해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사수들을 줄을 세워 연속적으로 발사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 뭉친 대형에서 분산 형태로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군대에게 중요했다. 제식 훈련이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늘어난 군대와 효율적 통제 덕택에 중앙정부는.. 2022. 11. 20.
[대항해시대] 3장 - 근대 해양 세계의 내면 III 해적의 세계: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반질서 근대 초에 해적이 활개를 쳤던 기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국가가 모든 바다를 다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국가 대신'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 다음에는 '국가의 지휘와 통제를 벗어나서'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 급기야는 '국가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으로 변모해 간다. '해적'이라는 넓은 범위 아래 사략선 업자, 버커니어, 그리고 좁은 의미의 해적이 있다. 사략선 업자(privateer corsaire)는 정부와 계약을 맺고 전시에 적선을 공격할 권리를 받은 사람을 말하는데, 근대 초에 제일 먼저 나타난 대규모 해상 폭력 현상이 바로 사략선이었다. 각국 정부는 무장을 갖춘 민간 선박에게 공식적으로 권리를 인정해 주어서 적국의 배를 공격하고.. 2022. 4. 4.
[대항해시대] 3장 - 근대 해양 세계의 내면 II 선원들의 세계 네덜란드를 떠나 목적지인 반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5개월이 자난 뒤였다. 동남아사이에 도착하고서도 이들의 행로는 아주 험난하였는데, 일부 선원들이 현지인들에게 붙잡혀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신속금을 내고 간신히 풀려나기도 하고, 반대로 그들이 지나가던 정크 선들을 공격해서 노략질을 하기도 했다. 선원들 간에 늘 싸움이 벌어졌으며, 독살사건도 일어났다. 자바섬에 이르렀을 때에는 원래 출발했던 248명 가운데 94명이 생존해 있었다. 항해는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선원들의 삶은 힘들고 비참하고 대개 짧았다. 파이프를 문 마도로스의 멋진 모습과 같이 우리가 선원에 대해 가지는 낭만적인 이미지는 실제의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선원생활이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혹독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기 .. 2022. 4. 4.
[대항해시대] 3장 - 근대 해양 세계의 내면 I 바다를 통한 전 지구적인 상호 소통의 증가에는 조선업과 항해술의 발전, 선원의 세계, 해상 위험, 해적의 발호 등이 따라오지만,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 차원에서 다룰 문제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바다가 누구의 것도 아닌 만인의 공통된 길이었지만, 바다는 잔인한 무력 충돌의 무대가 된다. 이 장에서는 선박 디자인의 발전과 같은 기술 측면과 더불어 대규모 자본의 축적, 지식과 기술의 결합, 국가를 정점으로 하는 폭력의 증가, 선원 집단이라는 프롤레타리아층의 형성, 폭력성에 대한 저항과 이탈 등의 문제를 다룬다. 조선업과 항해술의 발달 자동차와 기차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의 주요 원거리 수송 수단은 낙타대상(캐러번)이었다(다른 동물은 물을 많이 마시면 적혈구가 파괴되어 죽지만, 낙타는 5-10분 이내에 무.. 2021.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