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항해시대

[대항해시대] 4장 - 근대적 폭력, 폭력적 근대

by 마고커 2022. 11. 20.


군사혁명

 

마이클 로버츠에 따르면, 유럽사에서 사상 유례 없이 전쟁이 빈번했던 16-18세기에 일어난 군사혁명을 크게 네가지로 정리하는데, 첫째, 총포류가 창을 대신하는 무기상의 변화, 둘째, 군대 규모의 엄청난 증대, 셋째, 대규모의 복합적 전술의 사용, 넷째, 사회에 대한 군대의 영향 증가이다. 

 

초창기 화승총은 장전에 몇분이 소요되고, 유효사거리도 100미터 정도에 불과해서, 1분에 10발, 유효사거리가 200미터에 달하는 궁수에 비해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사수들을 줄을 세워 연속적으로 발사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 뭉친 대형에서 분산 형태로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군대에게 중요했다. 제식 훈련이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늘어난 군대와 효율적 통제 덕택에 중앙정부는 막강한 군대를 항시적으로 보유하고, 사회의 그 어느 집단도 저항할 수 없는 권력과 권위를 누리게 되었다. 1630년대 스페인은 약 3십만, 1700년대 프랑스는 약 4십만의 군사를 보유하게 되었는데, 이는 1470년대에 비해 10~15배 늘어난 숫자이다. 

 

한편, 이러한 군대의 증가는 다른 사회문제를 초래한다. 전체 세출 중에 군사비 지출이 75~90%까지 늘어났는데, 첨단 무기를 운용하는 현대 군대에서도 그 비중은 17%(프랑스)~41%(이스라엘)에 불과하다. 3만명의 군대를 먹이러면 매일 1만 파운드의 밀가루로 4.5만파운드의 빵을 굽고, 매일  1,500마리의 양 혹은 150마리의 소를 잡아야 하는 엄청난 일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이는 도시 하나를 지탱하는 것과 같은 규모였다. 

 

<출처: war history online>

 

모든 유럽국가가 군대를 증대하니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서 세력확장이 어려운데다가, 비용까지 많이 들게 되어 유럽 내부에 쌓여만 가고 신되지 못한 힘이 외부를 향해 표출되는 '제국주의'로 귀결되었다. 전통적 무기를 사용한 아시아의 함선에 비해, 함포로 무장한 유럽의 배들은 쉽게 아시아를 정복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유럽에 군사 혁명이 일어난 것은 맞지만, 이를 자유자재로 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이 모로코에 들어갔을 때, 총포 사용에 서투른데다, 싸움할테는 말에서 내려 보병처럼 싸우기조차 했다. 네덜란드가 자바나 말레이 반도에 들어가서 신무기를 사용하자, 원주민들은 그 사용법을 받아들였고, 자체 수리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즉, 'ㅂ유럽권은 유럽의 군사혁명 성과를 받아들이려고 해도 그러지 못하고 그 때문에 패배를 겪어야 했다'라는 주장은 오류라는 것이다.  

 

화승총을 일본에 전한 것은 포르투갈이었지만, 머스켓 총 사수들이 열을지어 순서대로 발사하도록 한 것은 오다 노부나가로, 이는 유럽에 비해 30년이나 앞선 일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에도 머스켓보다는 사무라이의 장검이 더 가공한 힘을 발휘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동아시아가 다른 지역에 비해 군사력이 강했지만, 그것은 꼭 유럽식 군사기술의 도입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오토만제국과 유럽의 대결인 레판토 해전도 비슷한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피상적으로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기독교 세력의 승리처럼 보여지지만, 합스부르크의 대항 세력은 오토만 제국이 아닌 프랑스였고, 오토만 제국도 합스부르크보다는 동쪽에 페르시아를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양 세력의 갈등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이었고, 이는 오토만 제국이 레판토 해전의 패배 후에도 200여척의 배를 이끌고 나타난 것으로도 증명된다. 

 

그럼에도 유럽이 해외 제국을 통해 이익을 갈취하였다. 다만, 군사혁명에 의한 힘의 우위보다는 이권을 둘러싼 현지인들 사이의 분쟁, 즉 이간계를 활용하였고, 전쟁이 필요한 경우에는 일시에 많은 군사력을 투입하기도 했다. 이는 문화적 차이에서도 기인하는데, 유럽에서의 전쟁이 죽음과 상존하는 것이라면, 동남아시아인들은 싸우되 누구도 서로 죽이려고 하지 않고, 따라서 소규모 전투만 계속하는 전통이 있었다. 동남아나 멕시코에서는 전면전보다는 특출난 용사들간의 대결로 전쟁이 마무리되기도 했다. 

 

유럽의 군사혁명은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 폭력이 넘쳐나도록 만들었다. 유럽내에서 완전한 평화를 누린 시기는 16세기에 10년 미만, 17세기에 4년, 18세기에 16년에 불과했다. 17세기 오스트리아와 스웨덴은 3년중 2년, 에스파탸는 4년중 3년, 폴란드와 러시아는 5년중 4년 꼴로 전쟁중이었다. 유럽인들의 폭력은 15~18세기 전세계로 뻗어나갔고, 이는 곧 '전쟁의 산업화'를 의미했다. 무엇보다도 세계의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들은 대개 유럽에서 발명되었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