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나 그란데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유명해진 글래스네빈 공동묘지는 1832년 개장이래 무려 150만명의 아일랜드이 묻혀있다. 영국의 탄압으로 개신교도가 아닌 카톨릭교도들은 죽어서도 묘에 묻힐 수 없었고, 아일랜드 종교해방의 아버지 다니엘 오코넬 신부는 이에 저항하다 아예 9에이커의 땅에 아일랜드인을 위한 묘지를 조성하게 된다.
이 곳에는 유명인사 뿐 아니라 모든 아일랜드인이 묻힐 수 있는데, 1840년대에 감자 대기근이 일어나는 바람에 80만이 한꺼번에 묻히게 된다. 그 뒤로도 찰스 스튜어트 파넬, 마이클 콜린스와 같은 독립운동가들도 이곳에 묻히게 된다.
글래스네빈 공동묘지는 내셔널 보타닉파크와 연결되어 있어서, 시간 여유를 갖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잘 관리된 온실은 아니지만, 매우 큰 규모를 갖고 있고 비가 많은 아일랜드 기후 특성인지 상당히 무성하다는 느낌을 준다.
내셔널보타닉파크에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앉아서 사색하며 글을 쓰던 계단도 보존되어 있다.
글래스네빈과 더블린을 두고 다니엘 오코넬을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도시 곳곳에 그의 흔적과 이름이 남아 있다.
글래스네빈에도 가장 높은 건물 아래 오코넬이 묻혀 있는데, 아일랜드인의 그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준다(더블린 시내 가장 번잡한 거리 이름도 오코넬 스트리트다). 1800년대 초반 영국이 아일랜드를 식민지화 하자, 오코넬은 그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며 민중 집회를 주도하며 전국 각지에서 50만명이 넘게 모여들게 한다. 영국의 탄압으로 결국 오코넬은 의지를 꺾지만, 그의 정신은 패트릭 피어스와 마이클 콜린스로 이어지며, 아일랜드 독립의 원동력이 된 IRA(Irish Republican Army)의 출발선이 된다. 우리의 신채호나 김구 선생님 정도라고 생각되는데, 아일랜드인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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