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반도 오감도'로 대상을 받은 후 2015년 아르코에서 귀국전을 했을 때 조민석 건축가를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채택한 두 나라의 경쟁이 서로 어떻게 건축을 발전시켜왔는 지, 그리고 그 건축은 체제를 어떻게 반영하는 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전시였다.
그 유명 건축가가 남해에 설계한 고급 리조트를 고 구본준 한겨레 기자님이 소개해 준 뒤로 언제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고, 결론적으로 휴식과 감동을 모두 잡을 수 있던 이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우스케이프는 여성패션으로 유명한 한섬 정재봉 부회장이 모든 사업과 사재를 털은 4천억원으로 조성했다. 구본준 기자님에 따르면 건축주 중심으로 명망가들을 소개하는 타 개관행사와 달리, 사우스케이프의 개관식에서 정부회장은 '경제성을 따지기보다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며 조민석, 조병수 두 건축가의 컨셉과 소감을 들었다. 안목있는 건축주와 실력있는 건축가가 만든 '작품'이 사우스케이프다.
엘리베이터가 일상화된 대부분의 특급 호텔과 달리, 주차를 하면 리셉션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야 한다(클럽하우스와 Suite 모두 2층이어서 엘리베이터가 없다). 건축가는 고객의 도착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주차장은 리셉션까지 바로 연결되지 않고 옥외로 나가는데, 계단의 위를 끝 부분 남기고 막아 놓아 마치 천상의 어느 한 점을 향해 오르는 기대를 부여한다.
천상으로 오르는 길이 맞았다. 구름과 바다가 맞 닿아 있는 천상의 궁에 도달했고, 태양의 위치에 따라 곡선의 건축은 다른 옷을 갈아입는다. 남해의 다도(多島)와 어우러져 있는 바다 전경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이런 지형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경이롭기만하다. 여행은 날씨가 7할이라 맑았던 첫날의 클럽하우스 뒤로 가라 앉던 석양도 멋지지만, 자연을 압도하지 않은 낮고 부드러운 설계 덕에 흐린 날의 사우스케이프도 평온하다.
사우스케이프의 숙박시설인 리니어스위트는 조병수 건축가 맡았다. 노출 콘크리트와 육중한 나무 문은 '이제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테니 편히 쉬다 가세요'라고 말하는 듯했고, 문 안쪽으로 나 있는 복도 끝에는 오직 두 개의 방만 존재했다.
넓은 테라스에서는 오직 객실의 투숙객끼리만 바라볼 수 있는 전경이 있어 마치 프라이빗 빌라에 온 듯했는데, 실제로 테라스 밖의 공간은 따로 막지 않았음에도 조경과 건축으로 교묘하게 통행을 제한하여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준다.
주로 골프 고객들이 이용하는 리조트지만, 식당과 스파와 그리고 일부 즐길 프로그램들을 준비해두었다. 날씨가 안 좋아 갤러리 투어나 문라이트 워킹은 할 수 없어 아쉬웠으나, 이 곳의 자랑이라는 뮤직라이브러리를 방문할 수 있었다. 차와 케잌을 즐기며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데, 스피커와 앰프는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제품, 사운드 큐레이션은 헤이리에서 카메라타를 운영하고 있는 방송인 황인용씨가 했다고 한다.
웨스턴 일렉트릭은 전기 통신의 시조새인 벨의 후신으로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사운드 부분에서도 최고의 역량을 갖고 있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석학들이 만들어낸 이 스피커의 사운드에서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시스템도 공간이 받쳐 주지 못하면 소리의 왜곡이 일어난다고 한다. 제대로 된 사운드를 듣기 위해 숲 속의 친구 집에 오디오 시스템을 옮겨 놓은 마루야마겐지가 생각난다. 서울 집 한채 가격이지만, 명품 욕심에 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 선뜻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고한다.
(개인적으로는 소리에 크게 감동 받진 못했다)
다시 오기 쉽지 않은 곳이지만, 언젠가 다시 여유가 되면 따뜻한 봄날 꼭 한번 다시 와 볼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전체 여행기는 위시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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