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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태백] 테라로사, 광천막국수, 철암역두선탄

by 마고커 2020. 8. 19.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좋아하는 여행지 태백을 다시 방문하기로 하였다. 국내 다른 유명 관광지도 많지만, 해발 700m 이상에 위치한 태백과 정선은 에어컨 없이도 꽤 서늘해서 여름 휴양지로 딱이다. 다만, 제천쯤부터는 국도를 이용하게 되어 서울에서는 오고가는 데만 한나절을 필요로 한다. 일단 양평쯤에서 아침을 하기로..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시작한 테라로사

 

당초 계획은 새로 개점한 스타벅스 100호점 양평TDR에서 아침을 즐기려고 했지만, 오픈발로 9시부터 미어터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양평 테라로사로 방향을 틀었다. 강릉 테라로사는 한두번 들렀지만 양평점은 대기가 많아 매번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있다.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는 IMF때 조흥은행에서 명퇴하여 외식사업을 시작했으나 실패했고, 해외 여행중 방문한 카페에서 사업 아이템을 얻었다고 한다. 개업한 2000년대 초만해도 국내는 동서식품의 커피믹스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고, 딱히 커피문화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일본과 유럽을 다니며 커피에 눈을 뜨게 된 김용덕 대표는 2002년 강릉에 테라로사를 개업한다. 2020년 현재 커피 시장의 전체 규모는 12조원이고, 그 중 믹스와 같은 소매시장은 2.5조원이다(커피믹스는 1조원안팎). 여전히 믹스커피를 즐기기도 하지만, 상당수가 믹스보다는 카페 전문점을 선호하고, 전문점의 수도 2016년에 비해 40%가 늘어난 약 7.1만개다. 스타벅스와 투썸, 이디야가 이 시장을 이끌었지만, 커피에 대한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낸 테라로사도 그 지분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테라로사가 바꾼건 커피 문화 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 대형 베이커리와 카페를 선구적으로 시작한 곳으로 지금은 도시 교외지역 곳곳에 대형 베이커리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철학의 부재로 그저 커다란 혼잡함에 머무는 곳이 많다. 테라로사는 '미술관 같은 커피 공장'을 테마로 손님을 많이 받지 못할지라도 테이블 간의 간격을 넓혀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미적 만족감을 주려고 노력한다. 양평 테라로사는 강릉에 비해 작은 규모지만, 충분히 세련된 편안함을 준다(물론 9시 첫손님으로 들어간 영향이 크지만). 

 

 

산지에서부터 고객의 테이블에 올라오기까지 철저한 품질관리가 이루어지는 커피를 스페셜티 커피라 한다. 테라로사는 그저 커피시장을 개척한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200여명의 직원들은 모두 정규직이고 철저한 훈련을 시킨 뒤 현장에 내보내며, 사택과 자녀들의 대학학비도 지급한다. 이런 직원들이 내리는 커피가 그리 허술할 일이 없다. 빵은 종류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커피에는 우열이 아닌 다름만 존재했다. 요즘엔 커피리브레와 같이 테라로사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 많아졌지만, 양평 테라로사는 공간과 커피가 어우러지는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요즘 최애 커피는 커피리브레로 언제 포스팅할 예정..)

 

 

 

지역 주민들도 즐기는 광천 막국수

 

양평에서 2시간 반정도를 달리면 정선을 거쳐 태백에 도착한다. 태백에서도 유명한 맛집 '광천 막국수'에 먼저 들러 점심을 하기로 했다. 1시 가까운 시간인데도 손님들로 붐볐고, 특히나 태권도복 입은 아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관광객 뿐 아니라 로컬들에게도 검증된 맛집으로 보였다. 

 

 

광천막국수라고 검색해보면 은근 꽤 많은 상호가 검색된다. 광천김도 유명한데 혹시 연관된 것일까? 어디서도 힌트를 찾을 수 없었지만, 평창의 광천마을이 그 기원이지 않을까 싶다. 평창은 예로부터 메밀의 산지로 유명했다고. 하지만, 강원도 이외의 지역에서 메밀막국수를 먹는다면 강원도보다는 제주도산일 가능성이 높다. 30%의 메밀이 제주도에서 출하되고, 강원도는 이제 10% 정도를 담당한다. 광천 막국수의 대표 메뉴는 역시 막국수겠지만, 여느 막국수집과 같이 메밀 전병이나 감자전, 도토리묵도 취급한다. 사이드 메뉴를 주문할 생각이라면 무조건 감자전이다. 안타깝게도 주문한 메밀전병은 오로지 우리의 테이블에만 올라와 있고, 다른 모든 테이블, 특히 로컬의 테이블엔 모두 감자전이다. 인터넷 검색에서도 광천막국수에 가면 감자전은 필수라고.. 

 

 

감자전을 못 먹었지만 그리 아쉽지는 않다. 메인 메뉴 막국수도 수준급이다. 아내가 서울의 고성 막국수와 비교하면 어떠냐고 물었는데, 다르다고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비빔과 물 중에는 물막국수를 추천하고 싶다. 맛있는 양념이긴 하지만, 맛이 너무 강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기 힘든 비빔국수였다. 물막국수는 강원도 특유의 담백한 맛이 잘 살아있다. 

 

아내가 막국수가 냉면보다 싼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하지 못했다. 옛날에는 100% 메밀을 써서 8분 안에 후딱 비벼 먹지 않으면 엉겼다지만, 전분 비율은 이제 냉면과 큰 차이가 있지 않다. 이전의 도정 기술은 껍데기를 잘 분리하지 못해 껍데기와 메밀을 같이 넣어 빻았지만, 그 수준은 넘어선지 오래여서 오히려 일부러 보리를 넣어 거뭏게 보이도록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단, 동치미 육수를 정성들여 내려 말아먹는 냉면에 비해, 막국수라는 이름답게 양념이나 육수도 후딱후딱 만들어 섞어먹는 조리법의 차이가 있다. 여름에 상하기 쉬운 동치미 육수를 전통비법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냉면집도 거의 없으니, 그저 브랜드가 가격이 차이를 만들지 않았나 추측해 볼 따름이다(14,000원 팔리는 을밀대 냉면보다 7천원인 광천막국수의 물막국수보다 맛있다고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겠다).

 

 

 

관광지로 거듭나는 철암역두선탄

 

'철암역두 선탄'이 아니라 '철암역 두선탄' 아닐까? 라고 잘난척했다가 망신당했다. 철암역앞선탄 혹은 철암역전선탄이라고 했다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역두'라는 말은 흔히 접할 수 없어서 오해하게 된 것이다. 배가 들어오는 곳은 부두, 기차가 들어오는 곳은 역두라고 철암역두 선탄 가이드께서 말해 주시니 더 확실히 이해가 간다. 철암역두 선탄장이 위치한 장성광업소는 2~30년전만해도 3~4천명이 일할 정도로 성업했으나, 이제는 400명 정도의 광부가 석탄을 캐고 있다. 생산량도 200만톤 수준에서 20만톤으로 그만큼 줄어들었고 앞으로 10년 정도면 폐광할 위기에 놓여있다. 2016년 강원도에는 다섯개의 탄광이 있었으나, 불과 4년만에 두개가 폐업해 국가에서 운영하는 장성, 도계 광업소와 보일러로 유명한 경동이 운영하는 세 곳의 탄광만 운영되고 있다.

 

 

장성광업소 코스가 아니라 철암역두선탄 코스로 개발된 이유도 여전히 석탄 채취가 이루어고 있어 광업소 탐방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물론 선탄장도 운영되고 있지만, 일을 쉬는 주말에만 시에 속한 가이드 분들과 함께 선탄장 탐방이 가능하다. 바닥이 온통 새까맣기 때문에 제공하는 비닐장화를 신고 탐방하게 되는데 작은 사이즈가 부족해 다소 불편하지만, 그다지 많이 걷지는 않으므로 거닐만하다. 위의 사진이 석탄 광구로 가는 길이다. 운반차가 다니는 길이 보이는데 200미터 안쪽에는 광부의 휴게소가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안전상의 이유로 광구진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철암역 주변 동네분께서 ;휴게소까지는 안전하니 열어주시오'라고 민원을 올려달라고 한다. 아무래도 선탄장보다는 광구가 관광코스로 인기가 많을 거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석탄을 잘게부수어 연탄을 만드는 곳도 같이 있다. 간단해 보이지만 하루 수만장의 연탄을 이곳에서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익숙한 구공탄도 있지만, 7공탄, 11공탄 23공탄 등 연탄은 표준이 없었단다. 생산설비나 유통의 효율을 위해 정부는 22개의 구멍을 내도록해 표준을 삼았다. 주변에 연탄 보일러는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일정한 수요가 있고, 고깃집 등에서도 필요로 하고 있다. 석탄 가루가 잘 성겨지도록 이전에는 진흙을 사용했는데, 미용효과가 알려지면서 진흙 가격이 너무 올랐단다. 그래서, 타고남은 연탄을 수거해 다시 활용한다고.. 우리가 연탄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무연탄이고, 탄소함유량이 적은 갈탄을 번개탄으로 사용하는데, 무연탄은 쉽게 불이 붙지 않지만 탄소함량이 높아 열량이 높다. 유럽에서는 위스키 제조 공정에 쓰이지만, 토탄은 석탄보다는 퇴비에 가깝게 취급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안보이는 곳에 선탄장이 있다. 채굴한 석탄은 암석과 섞여 들어온다. 물에 넣어 뜨는 것들을 가려모아 다시 말리는 방식도 사용했지만, 번거로움도 많고 무엇보다 이제 채굴량이 많지 않아 수작업으로 가려내고 있다. 가려진 석탄은 사진의 건물로 옮겨져 대기하고 있는 열차에 바로 떨어진다. 차량이 차게 되면 조금씩 기차를 움직여 다음 차량에 싣게 되는 방식이다. 왠지 익숙해 보일 수 있는데, 영화 '인정사정볼것없다'의 마지막 씬 촬영장소가 바로 이 곳이다. 가이드분께서 서로 포즈를 잡으라고 해서 사진을 찍었지만, 민망해서 둘만 갖고 있는 것으로.. 광업소에서 유일하게 여성분들이 일하는 곳이 선탄장으로 여기에는 슬픈 역사가 있다. 탄광에서 명을 달리한 남자들의 아내들의 먹거리를 해결해 주기 위해 우선적으로 채용했었다고.. 광부들의 임금은 생명수당이 포함되어 있어 8~9천만원 수준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최근에도 명을 달리하신 분이 있다. 

 

아직 캐낼 것은 좀 남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는 단가가 절반도 되지 않아 수익성이 낮아, 철암역의 장성광업소도 이제 10년 정도면 폐광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철암역앞 마을도 이에 대응하여 부서진 곳은 보수하고 건물안은 신식으로 인테리어해서 미용실, 식당, 주점 등을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의 구라시키 못지 않은 재생 컨셉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을 규모가 크지 않았던 것은 조금 아쉽다. 좁은 땅에 조금이라도 넓게 지으려 까치발로 건물을 만들었다는 것이 재밌다. 

 

 

 

전시 수준도 매우 훌륭했다. 철암역 앞 마을의 아이들과 주민들의 사진, 외화벌이로 독일로 갔던 광부들의 수집품들, 광부 한명한명의 표정 등 전시관이 된 가게마다 하나의 테마를 갖고 소개하고 있다. 특히, 장성탄광에서 돌아가신 수천명(정말 수천명이다)의 이름이 새겨진 조형 앞에서는 베를린의 '유대인 추모 공원'의 엄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두시간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세시간도 부족했다. 날씨가 궃기도 햇지만, 자연을 느끼러 온 관광객들이 굳이 이 곳까지 찾을 생각은 없는 지 오고 가는 사람들이 적다. 하지만, 단언코 태백 뿐 아니라 국내에서 손꼽을만한 관광지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문화해설사 분의 가이드가 없다면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 가급적 주말 가이드 시간에 맞춰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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