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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기행

[춘천] 춘천시립도서관

by 마고커 2022. 3. 9.


인류를 동물과 구별짓는 특징 중의 하나로 시작점이 다른 것을 꼽는 이가 많다. 동물들은 세대가 지나도 항상 같은 것을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지만, 인류는 이전 세대가 익힌 것을 잘 정리해두고, 다음 세대는 거기서부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기원전 3세기경의 알렉산드리아부터 도서관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오고 있다. 

 

책보다 책의 주변부를 좋아하는 이로써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그 지역의 도서관을 다녀보고,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그 첫번째로 춘천 시립도서관을 다녀왔다. 

 

 

춘천시립도서관은 강원도립 도서관의 형태로 1960년대에 개관하였으나, 도심에서 약간 멀고 좁아서, 이름도 공부 잘할 것 같은 석사동의 현위치에 2017년 9월 재개관하였다. 무영건축사무소(직장상사 갑질로 유명했던)에서 설계했는데, 책이 놀이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선의 '루

(樓)

' 컨셉에서 따왔다고 한다. 

 

 

건물이 거대해 과연 '루'의 느낌인지는 애매하고, 차라리 '고(庫)'라고 해야 맞지 않았을까 한다. 참고로 조선시대 건물의 구분은 아래와 같다.  광안루나 경회루는 곧 놀이를 위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① 의식(儀式)을 위한 공간은 궁(宮), 궐(闕), 전(殿), 당(堂), 청(廳), 단(壇), 묘(廟), 사(祠), 무(?) 

② 거주(居住)를 위한 공간은 각(閣), 헌(軒), 재(齋), 사(舍), 실(室), 방(房) 

③ 수납(受納)을 위한 공간으로 고(庫)와 간(間) 

④ 여흥(餘興)을 위한 공간은 루(樓), 정(亭), 대(臺), 관(館) 

⑤ 출입(出入)을 위한 공간은 문(門)과 루문(樓門)

 

 

 

입구를 들어서면, 교보문고나 서울 시민청을 떠 올릴 수 있는 계단식 독서공간이 맞이한다. 다만, 코로나 확산과 평일 때문인지 앉아서 책 보는 사람들은 없었고, 솔직히 계단 옆에 책들도 얼마 없어서 여기에서 책을 읽을까 싶다. 서고에서 꺼냈으면 그 옆에서 보고 말지.

 

 

춘천시립도서관은 카페를 과감히 1층에 배치했다. 도서관하면 지하에서 급식 후에 300원짜리 믹스커피 마시는 걸 떠올리기 쉬운데, 도시락을 싸 갖고와서 카페에서 점심 먹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깔끔한 식사 공간을 제공하는 점이 좋았다. 

 

 

춘천시립도서관은 최초의 장난감도서관을 보유한 도서관이다. 놀기만 하면 어쩌나 싶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노출할 수 있는 좋은 컨셉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코로나로 인해 잠정 휴관에 들어가 있다. 

 

 

장난감 도서관 옆에는 어린이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다. 아이들 책을 비치하고 책장의 높이를 좀 낮췄다는 것 말고는 어린이도서관에서 상상하기 쉬운 매트 바닥이나 아기자기한 공간들은 없었다. 통계에 의하면, 가장 책을 많이 읽는 계층이 초등학생이라고 하는데, 넓은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춘천의 장점은 이런 것이 아닐까. 대도시처럼 복잡하지 않아서 교외 카페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뷰가 나온다. 책보다 쉬기에도 좋고, 피로해진 눈을 정화하기에도 좋아 보인다.

 

 

책은 빛에 민감하다. 도서관은 대체로 햇빛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설계된 경우가 많은데, 춘천시립도서관은 조그만 창들을 배치해서 책도 보호하고, 책 읽는 자리에서는 좀 더 햇빛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2층과 3층의 자료실에 꽤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고, 신착도서들만 해도 층마다 한 개의 섹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운영에 신경 쓰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도서관 규모에 비해, 좌석수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공부를 하는 열람실이 아닌, 도서관의 기능에 충실하려는 좋은 시도였지만, 대다수는 인강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 함정.

 

 

춘천 배경의 소설들을 한 데 모아 소개하기도 했는데, 관광지가 아닌 담에야 '굳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인직, 김유정, 이외수, 윤대녕 말고는 잘 모르는 이름이기도 하고.. 

 

 

정기 간행물실을 보는 공간이 으리으리하다. 그에 비해 정기간행물의 수는 여타 중소규모의 도서관보다 특별히 많거나 하진 않아, 좀 아쉬웠다. 다른 특징으로는, 나무 독서대를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었고, 중앙치매센터와 협업해 치매 전문 섹션을 만들어 연관 도서들을 큐레이션 해 주고 있었다. 

 

 

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오전 9시~오후 10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주차장이 아주 넓었고, 무제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압도적인 건물의 외양과는 달리, 지역 도서관 본연의 목적에 매우 충실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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