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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대항해시대] 2장 세계와 유럽의 조우 III

by 마고커 2021. 11. 28.


영토 정복 방식의 스페인, 강제 교역이나 통행료 징수 방식의 포르투갈과 달리, 네덜란드와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체제를 아시아에 구축했다. 낯선 세계로  들어갈 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했지만, 폭력 사용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합리적으로 사용하고, 이를 통해 시장체제를 강요했는데, 이는 곧 국가 권력과 자본이 적절히 결합했음을 의미한다.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1600년대 초반 만들어진다. 1500년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세계를 휩쓰는 동안 왜 이들은 출발하지 않았을까? 포르투갈은 해상무역은 독점했지만 들여온 물건들은 대상 누구나 거래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에, 굳이 어렵고 힘든 바다로 나아갈 필요가 없었다. 포르투갈이 왕령으로 대상을 제한하자, 네덜란드 정부는 소규모의 작은 해상 무역회사들은 통합해서 동인도회사를 출범시키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동인도 회사는 네덜란드 전국의회를 대신하여 아시아의 국가 및 영주들과 조약 체결, 전쟁 선포, 요새와 상관 건설, 군인 충원 등 국가가 할 수 있는 여러 기능을 대신하여 '국가 밖의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막강한 권한은 부패를 낳아 18세기말 쇠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동인도 회사는  주식회사의 원조격으로도 불리는데, 대자본가들 뿐 아니라, 하녀, 하인, 과부, 직공 등 가난한 사람들이 소액투자한 것도 발견된다. 

 

이미 포르투갈이 100여년 동안 해상 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비교적 약한 고리인 인도네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다가 점차 영역을 넓혀가게 된다. 1600년대에는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1700년대에는 후추 값이 떨어지자 직물을 교역 대상으로 삼았다.  1600년대 후반이 되면 후추는 상류층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소비품이 된다. 직물의 경우도 큰 이윤이 남았던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 달랐지만 7~8%로 높지 않은 수준이었고, 무굴제국 황제의 압력으로 허가된 소수의 상인들과 거래해야 하는 불확실성으로 그나마도 용이하지 않았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아시아 교역 루트, 출처: 대항해시대>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네덜란드보다도 느렸고 규모도 상당히 작았다. 투자 원금에는 손대지 않고 투자 이익만 배당하는 형태로 지속적으로 투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특이했고, 후에 근대 주식회사의 형태로 변모해갔다. 이미 인도네시아로의 항로를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에 대항할 수 없어 인도쪽으로 진출했고, 그나마도 향신료 유통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장악하고 있어 1600년대 중반 캘리코라고 불리는 면직물 쪽으로 눈을 돌렸다. 다행히도 후추의 인기 저하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경쟁력이 저하되었고, 1700년대 초반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거래량이 더 많아지게 된다. 목면은 유럽인들의 '외피를 바꾸어 버린' 중요한 품목이었고, 이에 일찍 눈을 돌렸던 영국 동인도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다. 유럽에도 시리아와 알레포로부터 목면사와 아마를 섞어 짠 푸스티안 작물이 이미 있었지만, 영국 동인도 회사는 순면 제품을 유럽에 소개했다. 가볍고 무늬가 화려하며 세탁도 편해서 이목을 끌었고, 영국 동인도 회사는 대량 수입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물론 산업 혁명 뒤에 인도 면직물업은 크게 타격을 받는다. 

 

이들 동인도 회사는 17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역에 충실했으나, 이후는 정치적 영향력을 더해갔다. 특히, 인도로 진출하기 시작한 프랑스를 격퇴하자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을 넓혀간다. 일례로 지방의 세금 징수 업무를 대행하던 인도의 '자민다리'들은   수입이 천차 만별이었는데, 동인도 회사는 영국의 '지주(젠트리)-농업경영인(farmer)-차지농(peasant)'구조를 도입하며 이들 자민다리들을 지주로 만들었고, 이들은 성장하여 지배 계층이 되었다. 무역업으로 최대 실적을 올려봐야 연 수십만 파운드의 수익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연간 165만 파운드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도 경영은 점차 '회사'로서는 하기 힘들어, 영국 정부는 총독, 지사, 사령관을 임명하였고, 영국 동인도 회사의 모든 사업을 감시하는 정부 기관을 설립하였다. 이제 무역회사가 아니라 무역과 식민 지배를 아우르는 권력체가 된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던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인도의 면직물 사업은 저물었고, 식민지 하청의 업무만 띄게 되는데, 영국 정부는 1858년 '인도 통치법'에 따라 동인도 회사를 해산하고 직접 지배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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