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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 탐색

[인간의 가치 탐색] 클라라 제트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by 마고커 2021. 7. 4.


마르크스 주의 여성해방론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은 주류 페미니즘과 궤를 달리한다. 젠더 문제의 뿌리를 페미니즘이 아닌 마르크스 주의에 두기 때문인데, 마르크스 주의에 근간을 마련한 이들 중 하나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도 '가족, 사적소유, 국가의 기원'에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프롤레탈리아트 계급 여성의 일부일처제는 경제적 약자인 여성이 권력을 거머쥔 남성에 노예 상태로 종속되는 것이며 여성은 가사 노동력을 상품으로 하는 노동 도구로 취급된다"며 이를 지적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남녀 불평등을 결정하고 있으므로,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사적 소유를 해체하고, 가사 노동과 육아의 전면 사회화, 안정된 고용과 주거 보장, 사회 보장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성폭력, 성범죄 등 주로 대상이 여성인 범죄에 대해서도 '여성을 강간하면 안되는 게 아니라 인간을 강간하면 안되는 것'이라며 여성 문제가 아닌 인민의 권리 문제라고 보았으며,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해서는 성적 자기 판단 능력이 있는 인민들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며, 남성의 성적 욕망이 성범죄를 낳는다 선전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남성 혐오에 반대한다. 아울러, 성매매 역시 사적 소유의 산물이므로, 사적 소유가 철폐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법적, 제도적, 정치적 제도에 있어 여성의 동등권이 여성 평등권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에 대해, '부르주아 여성들은 참정권을 얻고 나면 보수적이 종교적인 반동 진영의 유순한 양이 될 것(로자 룩셈부르크)'이라며, 당연히 이루어져야하는 부분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고 보았다. 

 

블라디미르 레닌, 레온 트로츠키와 같은 공산주의 혁명가들도 여성해방론을 지지하는데, 마르크스 주의 안에는 여성해방론을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에는 여성 운동가 뿐 아니라, 레닌과 트로츠키의 글이 다수 실려 있다.

 

참고로, 산업 혁명 당시 노동자 계층의 여성들은 가정부, 공장일, 농사일, 광산일, 매춘의 다섯가지 일에 주로 종사했으며, 가정부, 섬유공장 직공, 매춘이 그 중 다수를 차지했다. 3분의 에서 절반 정도의 노동자 여성이 가정부로 일했으나, 산업 혁명으로 중산층 가정이 늘어나며 가정부의 수는 더 증가했다. 산업 혁명 전의 하인의 남녀 비율은 5:5 수준이었으나, 이후 여성이 월등히 많아져 1:9가 된다. 여성이 일하지 않고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 광산이나 공장에 아이들을 데리고가서 일했으며, 섬유 공장 같은 곳에서는 남성 임금의 5~70% 수준으로 14~16시간씩 일주일에 6일 노동을 했다. 이는 자본가가 남성보다 여성을 선호하는 계기가 된다. 

 

클라라 제트킨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대표적인 마르크스 여성해방론자들로는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제트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있다. 교재에서 다루는 인물은 뒤의 두 명으로, 제트킨(1857~1933)은 독일 중산층 출신의 교사로 대학 시절에 독일 여성 운동에 뛰어 들었다. 지금도 국제 여성의 날은 3월 8일인데, 클라라 제트킨이 1911년 주도한 것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독일 사민당(사회민주당) 소속이었으나, 1차 대전 당시 애국주의를 표방하자 탈당해서 독일독립사회민주당(후에 독일 공산당)을 결성했고, '부르주아 여성의 적은 남성이지만,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적은 남성 자본가'라며 여성운동이 프롤레타리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콜론타이(1872~1952)는 러시아 상테페테르스부르크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직물 공장 여공들의 참상을 보고 여성해방운동에 투신한다. 여성해방과 복리후생을 주장하면서도 남성들과 동등한 의무를 다해야 말할 권리가 생긴다며 군역과 노동의 의무를 요구한다. 결혼이나 전통적 가족 관계는 소유권에 바탕을 둔 억압적, 이기적 과거의 유물이라며 가족 해체를 주장했고, 여성의 이혼 권리를 관철(19세기 말에는 여성은 이혼을 요구할 수 없었다) 시킨다. 말년에 외교관과 소설가로 활동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파리 국제 노동자 대회 연설(클라라 체트킨, 1889)

 

여성 노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와 일부 사회주의 진영의 주장을 경제학적으로 반박한 클라라 체트킨의 연설문을 담고 있다. 

 

남성노동과 경쟁함으로써 임금을 떨어뜨리는 것은 여성 노동 자체가 아니라 자본가들이 여성 노동을 착취해 전유하기 때문이며, 사회적 노예인지 자유인지는 경제적 독립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노동자가 자본가에 종속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돼 있으며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는 한 그런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 주장한다.

 

체트킨은 '여성 해방'이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구실이 완전히 혁명적으로 바뀌는 것으로, 여성 권리를 위해 싸운다고 주장하는 부르주아 여성운동으로부터 해방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다. 전통적 생산 방식에서는 여성이 거의 모든 생필품을 생산했으나, 기계 생산 이후 가내 생산 활동은 경제적 의미가 없어져, '전업주부'는 사라졌다. 기계 생산에는 근력이나 숙련 노동이 필요 없어 여성이 대규모로 고용되었고, 남성 노동력은 남아 돌아 임금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된다. 여성은 남편에 대한 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났으나 자본가에게 종속되는 결과가 되고 말았지만, 적어도 남성과의 관계에서 경제적으로 동등하게 되었다고 체트킨은 보았다.

 

체트킨은 경제적 자유를 수반하지 않은 투표권이란 방향 없는 변화에 불과하며,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여성과 노동자가 온전한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당시 보통 선거권을 가진 나라들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서, 비록 정당한 요구일지라도 교육권, 참정권 보장이 온전한 해방을 가져올 것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 문제의 사회적 토대 (콜론타이)

 

콜론타이는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독립 못지 않게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거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여성은 개인으로 뿐만 아니라 아내이자 어머니로 억압받았고, 문명국 대다수에서 남편의 종속물로 여겨지며, 남편은 여성의 재산 처분권 뿐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지배권도 부여받고 있었다. 

 

중소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들은 교회혼으로 맺어진 전통적 가족을 거부하고, 가족을 더 유연한 관계로 바꾸었지만, 개인적 해결은 여성의 처지를 바꾸지 못하고 암울한 가족생활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런 가족 구조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은 강인한 개인들의 노력이 아니라, '강력한 생산력'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용기, 자본, 친구, 매력이 부족한 보편적인 여성에게 부르주아 여성의 '개인적 해결'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결혼계약이 노동자 계층의 여성들에게 출산, 육아의 부담을 줄여주는 유일한 보증서이므로, '자유로운 사랑'이 계급 사회에 일관되게 적용된다면, 여성은 가족생활이라는 고통에서 해방되기보다, 도움도 받지 못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부담을 떠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콜론타이는 전체 사회의 근본적 변화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족이 짊어지던 여러 의무를 국가와 사회가 지도록 바뀌어야 '자유로운 사랑'의 원칙이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과 남편에게 의존하도록 만든 물질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갖추게 된다. 페미니스트의 '자유로운 사랑'이 노동 계급에게는 '문란한 성관계'로 적용되는 이중적 잣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새로운 가족 형태와 결혼 관계가 가능하다고 보앗지만, 콜론타이가 볼 때 사회적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도 남녀  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콜론타이는 '임신,출산의 권리'가 중산층 페미니스트와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단결을 가져올 수 있는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부 진보 여성들과 사회 사상가들은 결혼 자체가 여성에게 특별한 의미가 없고, 어머니가 되는 것이야 말로 신성한 목표이자 일생의 과업이라고 주장했지만, 콜론타이는 한발 더 나아가 '가족이 수행하는 교육적 구실을 사회로 이양'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 현대의 고립된 가족의 해체도 빠르게 진행되고, 억압적인 결혼이 사랑하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결합으로 바뀌는 미래의 결혼 관계의 모습도 희미하게 드러날 것이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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