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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 탐색

[인간의 가치 탐색] 한나 아렌트

by 마고커 2021. 7. 4.


한나 아렌트

 

1906년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의 시민권을 획득해 미국의 정치철학자로 간주(본인은 한번도 독일 철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된다. 공화주의자이자 공동체주의자였고, 인간의 가치는 노동보다는 정치적 행위에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정치적 행위란 말 그대로의 '정치 행위'말고도 '타인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 일체의 활동'으로 사람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나치를 잉태했다고 보았다.

 

<출처: 나무위키>

 

아돌프 아이히만

 

아이히만은 한나아렌트와 같은 1906년 생으로 독일 서부 도시 솔링겐에서 출생한다. 오스트리아에서 기계 공학을 공부하다가 아버지의 사업부진으로 중퇴하고 정유회사 외판원으로 근무했다. 아버지의 사업을 돕기 위해 1930년 독일로 갔다가 변호사 에른스트 칼텐브루너의 권유로 친위대에 가입한다. 칼텐브루너는 '그는 신념을 가지고 당에 가입한 것이 아니었고, 또 어떤 신념에도 설득된 적이 없었다'며 그다지 이념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보내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의 상관인 폰 밀덴슈타인이 시온주의 고전인 테오도르 헤르츨의 '유대국가'를 권한 뒤로, 시온주의자로 개종하고, 히브리어와 이디시어를 배우기까지 했다. 재판전 여섯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를 '정상'이라고 판정했으며, 의사들 중 한명은 자신의 상태보다 낫다고까지 하였다. 대법원 항소 후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했던 목사는 아이히만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재확인한다.

 

그의 재판은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재판부에 최대한 유태인을 배제했는데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독일 출신이었으며, 친인척 중에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있다면 재판부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법정은 외국인 변호사를 금지하고 있으나, 아이히만 건을 위해 법을 고쳐가면서까지 독일인 로베르트 세르바티우스가 변호하게 했다. 

 

이 독일인 변호사는 아이히만이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당시 나치의 법률 제도하에서는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고, 기소당한 항목들은 범죄가 아니라 '국가의 공식 해위'이므로 복종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아예 이를 부정한다. 살인 죄목의 기소는 잘못되었으며,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유태인이든 비유태인이든 결코 죽인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아이히만의 임무는 '유태인 강제 이주'였다. 18개월 안되는 동안 오스트리아 유태인의 60%인 10만 5천명을 오스트라에서 '합법적'으로 추방했으며,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조직능력과 협상능력이 뛰어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출발과 도착을 동시에 맞추는 어려움, 철도 당국과 교통부로부터의 열차 확보, 배차 시간 조정과 열차가 '낭비'되지 않도록 유태인들을 제 시간에 대기 시키는 등 그의 일상적 업무가 유태인들에게는 글자 그대로 세상의 끝이었다. 아이히만은 "자신은 권한이 거의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크건 작건 '아돌프 히틀러'나 그 외 어떤 상급자의 지시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고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증언한다.

 

악의 진부성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성격을 1) 말하기의 무능함, 2) 생각하기의 무능함, 3) 이 둘에 기반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의 무능함으로 규정한다. 비엔나의 에피소드를 들자면, 유태인들은 이민 가기를 원했고, 나치는 유태인이 없는 제3제국을 원했기에 이 두가지 요구가 맞아 떨어졌고, 자신은 '양쪽에 공평했다'라고 아이히만은 말한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도 아니라고 확신하는데, 아렌트는 이는 전쟁 중 히틀러와 괴벨스가 만들어 낸 '독일 민족의 운명적 전투(der schicksalkampt des deutschen volkes)'라는 프레임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프레임은 1) 지금 수행하고 있는 것은 전쟁이 아니며, 2) 그것을 촉발 시킨 것은 독일이 아니라 운명이고, 3) 적들을 전멸시키지 않으면 자신이 전멸되고 마는 생사가 달린 문제로 인식하게 했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생애에 걸쳐 칸트의 도덕 교훈, 특히 의무에 대한 정의를 따르며 살아왔다고 강조하는데, 아렌트는 칸트의 도덕철학이 맹목적 복종을 거부하는 인간의 판단 능력과 연관된 것이므로 터무니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칸트에 관한 제 언급은 나의 의지의 원칙이 언제나 일반적인 법률의 원칙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며 정확히 정언명령의 정의를 말하기도 했다. 

 

'유태인 청소'라는 '최종 해결책(Final Solution)'의 임무를 부여 받은 순간부터 칸트의 원칙대로 사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도 인식했지만, 더 이상 자신은 자기 행위의 주인이 아닐 뿐더러 아무것도 바굴 수 없다는 생각을 자신을 위로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칸트의 정식을 기각하고 '네 행위의 원칙이 이 땅의 입법자의 행위의 원칙과 동일한 것처럼 행위하라, 다시 말해 총통이 너의 행위를 안다면 승인할 그런 방식으로 행위하라'라고 왜곡해서 읽었다고 판단한다.

 

사형을 집행하자 유태교 종교철한자 마틴 부버는 '독일에 있는 많은 젊은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을 덜어주'게 되었다며 비판한다. 이는 아이히만의 생각과 일치했으며 아이히만은 아예 공개처형을 원하기도 했다. 교수대로 향하는 동안 살 수 있는 시간이 두 시간 밖에 없다는 이유로 성경을 읽어 주겠다는 목사의 도움을 거절했고, 검은 두건을 씌우려고 할 때 필요 없다며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잠시 후면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라이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은 듯이 행동한다.

 

한나 아렌트는 말한다.

 

"마치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 진행된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을 마지막 순간에서야 그가 요약해주고 있는 듯했다. 말과 사고를 불가능하게 하는 악의 진부성이라는 교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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