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루소
장 자크 루소(이하 루소)는 1712년 제네바 출생으로 남들은 한 가지도 제대로 이루기 힘든데, 다방면에서 족적으로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우선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 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고, 로베스 피에르와 마르크스에 영향을 주었다.
교육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프뢰벨인데, 프뢰벨조차 아동중심 자유교육, 생활 중심 교육이라는 19세기 교육학의 체계를 정립한 것으로 평가 받는 '에밀'에 영향 받았다. 문학으로는 19세기 낭만주의, 특히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루소의 '신 엘로이즈'에 영향 받았고, 동요 '주먹 쥐고 손을 펴서'의 작곡도 루소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고 책임지지 않은 것으로 비판 받기도 하는데, 생활 능력이 부족해 보육원이 더 안전할 거라고 믿었다는 얘기도 있다.
루소를 다룰 때, 항상 비교되는 이들이 토마스 홉스와 존 로크다. 세명 모두 사회계약설을 이야기하기 때문인데,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자연상태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는 절대 권력 '리바이어던'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사회 계약을 주창하였다. 즉, 절대 왕권의 기본 사상이 된다. 반면, 로크는 대체로 평화로우나 일부 탐욕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을 자연상태라고 본다. 탐욕적인 이들로부터 사유재산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와 계약한다고 보았으며, 미국 의회 주의의 기본 사상이 된다. 루소는 로크와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하지만, 원시 상태를 평화롭고 자유로운 상태로만 보았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은 '일반의지'로 국가는 단지 이를 확대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 국가와 국민은 평등하며, 국가가 언제든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프랑스 혁명의 이론적 배경이 된다.
두 종류의 불평등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로 유명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1753년 프랑스 디종의 아카데미가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그것은 자연법으로 시인되는가?"의 주제로 논문을 모집할 때 응모한 것으로, 그 때는 탈락한다. 2년 후 '제네바 공화국에 받치는 헌사'를 추가하여 스위스에서 출간하는데, '행복하게 살았던 자연상태의 이야기(1부)'와 '인간이 자연을 떠나고 인위적인 힘이 개입되면서 행복을 잃어가는 모습(2부)'로 구성되었다.
소유가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로 돌아가자는 결론을 도출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이후의 '사회 계약론'이다.
루소는 불평등에는 '자연적 혹은 신체적 불평등'과 '도덕적 혹은 정치적 불평등'이 있다고 보았다. 전자가 나이, 건강, 체력, 정신 등이라면, 후자는 부유하다거나 더 존경받거나 권력을 누리며 다른 사람을 복종하게 하는 불평등을 말한다. 사람들의 차이는 일부 자연적(전자)인 것들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그 차이를 더 크게 만드는 것은 후자다. 이를 테면, 머리가 더 좋은 아이가 부잣집에서 태어날 순 있지만, 같은 교육으로도 그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원시 상태에서는 이런 차이가 잘 나타나지 않았다. 자연의 선물을 많이 받은 사람일지라도 다른 이들을 헤치고 얻을 수 있는 이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묶어 두어 얻는 이득이 감시하는 수고보다 더 작았기 때문이다.
초기 인간의 상황
'이 곳이 내 땅이다'라는 선언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발생했다.
초기의 '동물의 삶'은 자기 생존과 자기 보존의 배려가 우선된다. 성욕구를 충족시키면 남녀가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아이들조차 어머니 없이 생활이 가능해지면 떠나게 되는 사회다. 조금 더 지나면 '자연의 장애를 극복하는 삶'이 시작된다. 동물을 무찌르고, 다른 사람들과 생존을 다투게 된다. 열매를 두고 동물과 경쟁해야 했으므로 신체를 단련하고 나뭇가지나 돌멩이 등의 무기를 활용한다. 다음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 자각'이 나타나는 시대다. 인류의 증가로 인한 고통이 증가되고, 흉년, 더위, 추위를 피하기 위한 근면성이 요구된다. 드디어 '크다', '작다', '빠르다', '느리다'와 같은 비교 개념의 어휘들이 나타났고, 도움이 되는 동물을 길들이고, 해가 되는 동물을 위협했다. 인류를 1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개인에 대해서도 그 지위를 요구한다.
시간이 흐르며 인간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 자신과 일치한다고 결론을 얻은 '공통의 이해 관계'시대가 시작된다. 동족의 도움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와 경쟁으로 동족 내에서 다투는 경우를 구분하기 시작했고, 약속의 대략적 개념과 그것을 이행할 때의 장점을 서서히 취득한다. 마지막으로 '소유 개념'이 시작된다. 이제까지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현재의 민감한 이해 관계만을 다투었지만, 돌도끼를 만들고 나뭇가지로 오두막집을 만들면서, 가정의 확립과 구별을 형성하며 일종의 소유개념을 끌어 들인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오두막집을 짓는데 집착하지 다른 오두막을 뺏어야겠다는 생각까진 가지 않았다.
불평등의 시작
같은 생활 양식과 음식, 공통된 기후에 의한 풍습으로 하나가 된 개별 국가가 나타났다. 젊은 남녀가 이웃에 살며 교류가 일상화 된다. 아울러, 사물들을 오래 지켜보다 보니 가치와 미에 대한 비교에 익숙해졌으며, 타인에게 주목하고 본인도 주목 받길 원하게 된다. 가무에 능하고, 아름답고 강한 사람이 존경 받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치심과 시기심이 생겨나며 불평등, 즉 악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된다.
예절이 나타나 고의적인 잘못은 모욕이 되었고, 자신의 인격에 대한 경멸로 받아들여져 복수가 맹렬해진다. 그러나 아직은 야만인의 우매함과 문명인의 불행한 지식이 공존하는 시대로, 자신을 위협하는 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준에 그치는 '세상의 청년기'에 머물렀다. 루소는 이후의 모든 진보가 표면적으로 개인의 완성을 향해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종의 쇠퇴를 위한 발걸음이라고 보았다.
이런 쇠퇴의 근본 원인을 루소는 야금술과 농업에서 찾고 있다. 인류를 타락시킨 것은 시인에게는 금과 은이었고, 철학자에게는 철과 밀이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의 식량을 가지는 것이 유익하다고 알게되는 순간 평등은 사라지고 사유의 개념이 시작된다. 숲은 인간의 땀으로 물을 줘야하는 들판으로 변하고, 들판에서 노예제와 빈곤이 싹튼다. 이 커다란 혁명을 가져온 것이 야금술과 농업으로 둘 중 하나만 갖고 있던 지역은 여전히 야만에 머물렀지만, 그렇지 않았던 유럽은 다른 대륙보다 문명화와 사유의 개념이 빠르게 진전된다.
농업 기술을 발달 시키기 위해, 전문적으로 쇠를 녹이고 담금질 하는 이들이 나타났고 분업이 시작된다. 토지 경작의 결과로 토지 배분이 뒤따랐고, 소유권이 나타나자 최초의 사법권이 등장한다. 땅의 산물에 대한 권리를 주는 것이 노동인데, 이로 인한 자연적 불평등은 사회적 결합에 의해 성과면에서 차이를 주어 개인의 운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똑같이 일하면서 어떤 이는 겨우 생활할 정도로 버는 반면, 어떤 사람은 많이 벌게 된다.
이에 평등은 깨지고 무질서가 뒤따랐으며, 부유층의 횡령, 빈곤층의 약탈 등 연민과 약한 정의의 소리들을 질식시킨다. 최강자의 권리와 최초 점령자의 권력 사이에 전쟁이나 살육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영원한 갈등이 시작된다.
루소는 그래서 원시 상태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평등이 시작되기 직전인 오두막을 짓긴하지만 서로의 오두막을 뺏진 않는 상태로 돌아가자고 사회계약론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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