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데리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유태계 프랑스인. 알제리 출신들이 축구를 잘 하는지 지네딘 지단도 알제리계(출생은 마르세유지만 부모님 모두 알제리 사람).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래서 주류에 편입되지 않고 이방인으로 다른 이론에 천착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데리다한테 물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을 듯. 로고스, 즉 이분법으로 정리하는 서양 근대 철학에 반기를 들고, 포스트모더니즘의 근간이 되는 해체주의를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쓰면 많이 어려워 보이는데, '돌멩이는 딱딱하다'라고 하는 건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단단하지만 딱딱하지 않을 수 있고, 힘 좋은 누군가에게는 이도 저도 아닐 수 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듯. '환대에 대하여'에 해체주의 관련한 내용은 없지만, 글로벌 이동이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적용이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이를 해체하고, 환대에 기반하여 재구성한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해체주의에 근간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무조건적(절대적) 환대
우리가 외국 공항에 도착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세관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은 우리의 '이름'이다. 그 다음, '어디서 묵을 것인가', '왜 왔니?', '언제 갈꺼니'. 우리는 여권과 비자로 그 나라에 입국할 자격을 갖게 되는데, 데리다 관점에서는 이는 그저 '관용'일 따름이다.
관용은 '힘의 불균형'에 기반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일부 훼손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를 맞이하는 이들은 그들의 정치체제와 문화를 지킨다는 조건하에서 우리를 환대하는 것이다. 무슬림 난민이 도착했을 때, 신앙을 포기해야만 난민 지위를 주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관용' 혹은 '조건부 환대'일 수 있지만, 데리다 입장에서의 '환대'는 결코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변명'에서 사투리를 써도 재판장 내 사람들이 개의치 않을 거라하고, 칸트가 '영구평화론'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리다는 이는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와 칸트 모두 '이름 있는' 이들에 대한 환대를 말하고 있을 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익명의 사람들에 대한 환대까지 확장되지 못하기 때문에 '조건부 환대'에 불과하다.
'이름을 묻지도 말고, 나의 집을 열 것을, 자리를 내 주고, 절대적 타자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 이것 데리다가 말한 '절대적 환대'다.
법(La loi)과 법들(Les Lois)
난민을 무조건 수용하기로 했다고 가정하자. 조건이 없기 때문에 데리다의 '절대적 환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조건 수용한다는 건 어떻게 수용한다는 것인가. 집도 절도 없는 난민이 정착하려면 일단 어느 수준까지는 먹고 살만하게 해 줘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느 수준까지 제공해야 절대적 환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기에 데리다는 도착자(Arrivant)에게 이름도 묻지 않고 대가도 바라지 않는 '환대의 법'과 조건을 다루는 '환대의 법들(법률)'이 이율배반적으로 상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조금 궁색하지만) 데리다는 '환대의 법들'은 복수형으로 n+n+n이 아닌, '환대의 법' 즉, 1(the one)에 '환대의 법들'이 이율배반적으로 더해진 형태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끊임 없이 그 둘 사이에서 번민해야 한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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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어렵게 쓰여 있다. 본인은 알고 쓰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리고, 해법이 절대적 환대여야 하는 지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아서, 흐름을 쫓아가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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