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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부스러기

[아버지의 이름으로] IRA와 북아일랜드, Bloody Sunday, 다니엘 데이루이스

by 마고커 2021. 4. 17.


오래전 영화지만, 짐셰리던 감독의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봤다. 1974년 런던에서의 폭탄 테러의 주범으로 히피 복장을 한 제리 콘론을 임의 체포하고, 폭탄 주범을 빨리 검거하라는 시민들의 요구로 그를 진짜 범인으로 조작한다. 증거도 없이 검거했으니 난감한 정보부는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며 제리에게 거짓 자백서를 쓰게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아버지 쥬세피 콘론과 이모의 가족들까지 공범으로 몰아 장기간 감옥에 수감시킨다(이게 실화라니 ㄷㄷ...). Rotten Tomato에서 90점 넘게 유지하는 영화고, 199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모두 후보가 된다. 수상을 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었지만, 그 해 수상자가 쉰들러리스트와 스티븐 스필버그, 남우주연상은 필라델피아의 톰 행크스가 받았으니 용서하자(여우 조연이었던 엠마톰슨도 후보였지만, '남아 있는 나날'로 여우 주연 후보도 되었고, 수상은 피아노의 홀리헌터였다. 1994년은 영화 풍년이었구나). 이 영화의 부스러기로 (누구나 알 법한) IRA와 북아일랜드, 그리고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알아보자.

 

한참 젊은(?) 다니엘 루이스

 

1) IRA와 북아일랜드, Bloody Sunday

 

아일랜드는 헨리 2세때 800년 가까이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영국과 아일랜드 모두 카톨릭이었지만, 1500년대 헨리8세 이후로 개신교(성공회)의 압박을 받게 된다. 대부분의 아일랜드인은 카톨릭은 남아 있엇지만, 스코틀랜드가 가까운 북쪽의 6개주는 성공회신자도 늘어난다. 이에 성공회 신도들이 북쪽에 많이 모여 살게 되고, 1920년대 아일랜드의 독립 시에도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자치구로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IRA는 북아일랜드를 인정하자는 온건파와 민족주의 계열인 급진파로 나뉜다. 아일랜드 독립의 아버지 '마이클 콜린스'를 죽인 건 영국인이 아니라 바로 민족주의 계열의 IRA였다. 아무튼 결국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로부터 분리된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주로 성공회 신자인) 부자에게 더 많은 투표권을 주는 등 카톨릭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고, 이러한 분위기는 1970년대까지 유지된다. 1972년 민족주의자들의 시위에 영국군은 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 14명을 죽이게 되고, IRA의 급진성을 부채질하게 되었다. 내전은 30년 가깝게 진행되었고, 1998년 벨파스트 협정을 통해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직접 통치로부터 벗어난다. 이후에도 IRA의 무장은 계속되다가, 2007년에야 해체된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아들 제리 콘론은 정치 의식 없는 좀도둑으로, 아버지 쥬세피는 IRA의 할동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나올 정도로 IRA의 활동이 모든 카톨릭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72년 '피의 일요일' 사건은 아일랜드인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더블린 출신의 U2는 이 사건을 노래한 'Sunday Bloody Sunday'를 영국의 심장부 런던에서 공연한 것으로도 많은 존경을 받지만, 포스팅을 하면서 찾아본 벨파스트 공연의 숙연함이 더 감동적이었다. 

 

 

북아일랜드가 현재 영국의 자치령으로 남아 있지만, 독립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1998년 협정에 북아일랜드 주민의 투표로 아일랜드에 합병하거나 독립국이 될 수 있음이 명시되어 있고, 영국의 브렉시트로 그 관계는 더 오묘한 상태(영국과 유럽은 이제 관세를 매겨야 하지만,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서 물건을 주고 받으며 관세를 피하고 있다)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성공회와, 장로회, 감리교를 포함한 개신교도가 60%이고, 카톨릭 중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 받는데 굳이 영국을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면서 현재의 상태로 남아 있길 원하는 사람도 다수다. 

 

2) 다니엘 데이 루이스

 

명배우로 이미 소문났지만, 얼마전 '갱스오브뉴욕'에서 'Bill the Butcher'를 인상 깊게 보아서, 오래전 관심에 두었던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이제서야 보았다. 영화의 제리처럼 구속을 싫어한 자유 분방한 성격탓인지 계관 시인인 아버지 세실 데이 루이스가 엄격한 학교로 보내자 방황하고 사립학교 버데일즈에서야 자기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역시 짐셰리던 감독의 '나의 왼발'에 주연으로 나와 1990년 아카데미를 거머 쥔다. 짐셰리던 감독의 필모를 보면 좀 들어봤다 싶은건 다니엘 데이루이스와 함께한 것이 많다. 이 정도면 감독의 역량이라기보다 다니엘빨이라고 봐도.

 

나의 왼발, 데어윌비블러드, 링컨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세번 받은 유일한 배우 ㄷ ㄷ. 상을 못 받았어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라스트 모히칸', '팬텀쓰레드'.. 알 만한 영화에 다수 출연했는데, 그 마저도 그의 영화 인생에 중간에 목공과 제화를 배우겠다며 5년씩 두번 쉬었다. 하지만,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고 하면, 확 달라진다. 갱스 오브 뉴욕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쉴 때도 뉴욕 억양으로 이야기하며 점심때는 칼을 갈았고(디카프리오가 촬영내내 엄청 위축되었다고), 나의 왼발에서는 촬영하지 않을 때도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라스트모히칸 촬영 전에는 미군사학교의 도움을 받아 야생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데어윌비블러드에는 상대 배우가 쫄아서 도망쳐서, 다른 상대역이 쌍동이 역할을 해야만 했다고. 

 

영국 사람이지만 아버지 세실이 앵글로-아이리쉬여서인지, 아일랜드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고, 아일랜드 국적을 취득하며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지금도 더블린 아래쪽 위클로우에 살고 있다고. 아일랜드 자체가 인구 490만인데 예이츠, 사무엘 버켓, 버나드쇼, 제임스 조이스 등등등을 배출한 문화 강국인데, 일부 도시만 근대화 되고 자연 상태로 남은 곳이 많아 낭만주의 예술인들의 선망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증명할 방법은 없다. 다만, 지금도 1991년생 '샐리 루니' 같은 작가('노말피플'로 유명)가 나오고, U2, 시드네이오코너, 엔야, 크랜베리스와 같은 뮤지션들, 콜린파렐, 리암니슨, 피어스 브로스난, 가브리엘 번 같은 배우들도 아일랜드 출신(영화쪽은 상대적으로 문학에 비해 약해 보이네). 참고로, 친 아일랜드 성향을 강하게 보이는 켄로치는 영국 사람이다. 

 

한동안은 다니엘데이루이스 몰아보기를 시전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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