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소개되었고, 배우 정진영의 강력한 추천으로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으나 이제서야 보게 된 '런치박스'. 충분히 관심 받아야 할 영화였다. 다른 곳에서도 많이 소개되었지만, 줄거리는 이렇다. 소원해진 남편에 도시락을 싸서 보내는 일라는 도시락이 잘못 전달되었음을 알게 된다. 다만, 싹싹 비워준 사잔에게 고마워하며 다음 날도 편지와 함께 도시락을 보내고, 이를 시작으로 도시락으로 편지를 주고 받게 된다. 결국 둘은 행복지수가 높다는 부탄으로 떠나자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은 통역이 되나요>가 떠 오른다. 모델 촬영 때문에 도쿄에 방문하게 된 빌 머레이가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던 스칼렛 요한슨을 만나 정신적 교감을 하게 되는 내용인데, 소원한 스칼렛 요한슨의 남자친구, 그리고 떠나다 말고 찾아 나서는 설정까지 꽤 닮아 있다. 그럼에도 이르판 칸과 님랏 카우르의 꽤 인상적인 연기로 아류처럼 보이진 않는다. 도시락 배달이라는 설정은 꽤 재미있다. 상점의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은 흔하지만, 집에서 만든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은 상상의 산물이라 생각(가져가지, 배달은 왜?)했는데, 다바왈라(Dabawalla)라는 무려 120년 전통의 어엿한 직업이라고. 이번 부스러기에서는 다바왈라와 이르판 칸에 대해서.
1) 다바왈라
도시락(다바)과 배달(왈라)의 합성어로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음식을 전달할 수도 있고 상점 도시락의 위생을 못 믿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 한다. 영화에서처럼 스테인레스로 된 3~5단 도시락을 배달하는데, 카레 같은 국물이 많은 인도 요리에 적합하고 스테인레스로 되어 있어 위생에도 좋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헝겊으로 된 도시락통으로 한번 더 싸지만, 대체로 위와 같이 담아 가는 듯. 배달원은 뭄바이에 5천명 정도 있고 하루 20만개의 도시락이 배달된다. 도시락이 배달되기까지 평균 4번의 손바꿈을 하게 되는데, 취합 및 어디로 갈지 표기 -> 기차역으로 배달 -> 이동 -> 기차역에서 어디로 갈지 분류 -> 배달의 순으로 가게 되는 듯. 20만개의 도시락이면 오류가 날만도 한데, 하버드 대학의 분석으로는 99.999% 정확도를 보였다고. 영화에서 일라가 배달원에게 잘못 보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배달원은 하버드 시스템에서는 정확하다고 대응할 때, 인도답게(?) IT를 활용하는 줄 알았으나, 숫자와 색을 이용한 이들만의 분류 시스템에 대한 높은 평가였다고 한다. 하긴 세자리 곱셈도 몇초안에 하는 인도인들이니.. 자료를 찾아보니, 한달 배달 서비스는 10달러 이하에서 이용할 수 있고, 다바왈라들의 평균 월급은 33만원 정도인데 인도에서는 꽤 괜찮은 수입에 속한다고. 배달하는 동안은 정신없이 바쁘지만, 안정적인 수입으로 꽤 인기있는 직업이라고 한다.
2) 이르판 칸
우선 작년에 돌아가신 이르판 칸께 애도를.. 인도 최고 배우는 샤룩 칸으로 알고 있는데, 런치박스 소개마다 인도 최고 배우라고 해서 관심을 갖고 찾아보았다. 최고 여부를 떠나서 1967년생의 이르판 칸은 런치박스에서 훈남 중년의 연기를 꽤 매력적으로 해낸다. 정말 근처에 이런 아저씨 한명 있으면, 남녀관계를 떠나 많이 의존하고 싶을 듯.
이르판 칸을 최고 배우라고 한건, 아무래도 인도(볼리우드) 영화보다 헐리우드 영화에 많이 얼굴을 알렸기 때문인듯하다. 대표작 <라이프오브파이>는 물론, <쥬라기월드>, <슬럼독밀리어네어>, <어메이징스파이더맨>에도 출연했다. <런치박스>가 볼리우드 스타일과는 꽤 다르다고 느꼈던 것도, 감독 리테쉬 바트라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같이 인도 외부에서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르판 칸의 이미지가 상상하던 인도 남자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키스탄 바로 아래쪽 라자스탄 지역에서 태어났기에, 힌두가 아닌 이슬람교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이 볼리우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지 않았나 추측해봤다. 볼리우드 영화에는 주로 조연급으로 참여해왔고, 무엇보다 인도 최고 인기 배우 샤룩 칸도 무슬림이라서 볼리우드 영화계에 종료로 인한 차별은 크지 않은 듯하다. 희귀암에 걸려 54세의 나이로 2020년 뭄바이에서 돌아가셨다. 여우 주연인 림낫 카우르도 꽤 인상적인 연기(특히, 샤잔을 기다리던 레스토랑 장면)였으나, 이 영화 뒤로 그다지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하는 듯.
막연한 인도 영화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던 좋은 영화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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