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나 강릉에 비해 고성은 그리 잘 알려지진 않았다. 분단 상황 때문에 많은 군부대가 위치해 있었는데, 금강산 관광과 더불어 차츰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푸른 해수욕장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속초 위쪽부터 켄싱턴리조트가 위치한 켄싱턴 해변부터 봉포, 천진, 청간, 아야진, 교암, 백도, 자작도, 삼포, 봉수대, 송지호,,,,,,,,,,화진포,,, 마차진, 명포 해수욕장까지 길게 이어지는데, 강원도의 92곳 해수욕장 중에 27곳이 고성에 위치한다. 태백산맥이 위치한 동해안은 바닷물의 파랑에도 끊임없이 토사를 공급할 수 있어서 서해안이나 남해안처럼 '만'이 형성되지 않고 넓은 해수욕장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나, 고성의 해수욕장은 자갈 없이 모래로만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아이들 놀기에도 상당히 적합해 보였다.
8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였는데, 일요일 아침이어서 교통 체증 없이 3시간 조금 더 걸려 고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곳의 최고 맛집이라는 백촌막국수에 방문했지만, 일요일 아침 11시반부터 1시간반 대기. 따뜻한 날이라면 기다려보겠지만, 겨울 날씨에 그 정도 정성은 없어서 주변 맛집을 검색해 아야진항에 위치한 오미냉면에서 비빔 막국수를 먹기로.
알고 보니 나름 40년 전통의 맛집이어서 20분 정도는 여기에서도 기다려야 했다. 속초, 고성 지역은 특히 회냉면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함흥처럼 홍어회를 올렸으나, 많이 잡히지 않을 때 가자미회로 대체하다 명태껍질을 벗겨서 회를 올리니 비린내도 없고 좋아서 그 방식이 계속 이어져 온단다. 면은 다소 질긴감이 있는 것이 전분비율이 높은 듯 하지만, 양념장이 수준급이다. 사전 정보 파악 부족으로 수육을 주문하지 않았던 것이 실수라면 실수. 2~3인이 방문한다면 수육과 냉면 곱배기 하나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양이 적지 않아 혼자 먹는다면 굳이 곱배기를 주문할 필요는 없다. 식후 가진항 쪽에 위치한 에이프레임이라는 대형카페에서 차 한잔을 했는데, 큰 통창으로 바다가 시원히 보였으나 커피 맛은 그다지 좋진 못했다. 옆으로 큰 베이커리 카페도 하나 생겼으니 그곳을 가도 괜찮을 듯.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사회적 거리두기도 있고 해서, 많이 돌아다니기보다 전망 좋은 곳에서 바다나 실컷 보고 오자는 것이었다. 깔끔한 호텔들이 강릉과 속초에 많이 있으나, 고성에 한적하고 깔끔한 호텔이 있다고 해서 서둘러 예약했다. 유명 관광지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모두 바다 뷰로 객실을 구성했기 때문에, 객실수가 부족해 예약은 쉽지 않다. 게다가 왠만하면 할인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여러 사이트 돌아다니며 비교해 볼 필요 없다. 원한는 날짜에 객실이 있다면 아무 곳에서 예약해도 큰 손해를 보진 않는다.
짧은 여행이기에 시간 맞춰 체크인했다. 3시 체크인이라고 3시에 도착하면 곤란하다. 그때부터 순차적으로 체크인이 진행되기 때문에 1시간쯤 전에 도착해서 번호표 뽑고 1층에서 쉬는 것도 좋다. 로비도 모두 통창이고 송지호 해변이 한 눈에 보여 시원하다. 책을 갖고 왔다면 로비의 편안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어도 좋고, 송지호 바닷가를 거닐어도 좋다. 속초쪽에서 소문났는지 마침 2층에서는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르네블루는 르네 마그리트와 파랑을 뜻하는 Bleu가 합쳐진 이름인데, 파란바다를 데칼코마니처럼 숙소로 옮겨온듯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참고로 르네블루를 프랑스어 그대로 번역하면 '순수한 파랑(Pure Blue)'가 된다. 워커힐 그룹이 기존에 있던 건물을 인수해서 리모델링했고 87개의 객실 모두 통창을 가진 바다뷰다. 예약한 방은 가장 일반적인 패밀리 디럭스로 퀸과 싱글 두개의 침대가 있다(침대가 하나인 디럭스룸과는 만원 차이여서 패밀리 디럭스를 선택했다). 일반적이라고 하지만, 다른 호텔보다 객실이 훨씬 넓어 부족한 점이 없었다.
특이하게도 욕실이 방에 노출된 구조다. 살짝 야하게도 보일 수 있지만, 욕조 안에서도 파란 하늘과 바다를 보면 쉬라는 배려가 된다. 물론 블라인드를 내릴 수도 있다. 우측의 그림은 스피커. 깔끔하지만 소리는 보통. 시중에서 2~30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미세먼지 청정 지역 강원도에서 '굳이'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공기 청정기도 있다. 다만, 에어컨과 난방 장치가 최첨단(!)인지 조작이 무척 어려웠다.
계절탓이기도 하겠지만, 속초로부터 거리가 있어 바다는 그리 붐비지 않았다. 날씨가 좋아 파도도 잔잔했고, 호텔문을 나서자마자 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호텔 룸서비스 음식도 호텔치곤 후덜덜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평이 좋진 않아서 오호항 근처 풍년횟집을 찾았다. 실패하기 쉽지 않은 음식이 또 물회여서 맛은 나쁘지 않았고, 정식에 포함된 미니회도 괜찮았다. 바쁜 어부들이 배 위에서 회와 야채를 물에 말아 후다닥 먹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물회라고. 다만, 추운 날씨에 물회는 추천하고 싶지 않았다. 속초처럼 번화하지 않아서 저녁시간에 손님은 거의 없었고, 간혹 근처 숙소에서 테이크아웃 해 가시는 분들이 있었다.
참고로 횟집 가는 길에 송지호해변 뒷쪽 마을의 벽화거리는 꽤나 아기자기해서 인스타 스팟으로도 좋을 듯.
르네블루의 다른 장점으로는 일출을 방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구름이 많은 아침이어서 조마조마했지만, 아주 잠시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가리는 것 없이 마치 야외에서 일출을 보는 듯 하다.
부지런한 아빠는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연우, 지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셨고, 소은이는 왠만하면 남자 친구와 결혼하길 바랄게. 이 정도 이벤트 준비했으면 수고한거다.
사회적 거리두기 관계로 조식은 단품으로 제공된다. 2층 식당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룸서비스로 주문했다. 비주얼에 비해 맛은 보통. 좀 쉽게 만든 느낌이라고나 할까. 예약할 때 조식포함 상품만 있어서 포함시켰지만, 근처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체크아웃 후 바닷가에서 좀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국 10대 시장이라는 속초 중앙시장을 들렸다. 다녀 본 어느 시장보다 규모가 컸고,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다양한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호텔에 있던 사람 다들 어디서 밥먹나 했더니, 많은 관광객들이 중앙시장 들러 먹거리를 사와서 숙소에서 먹는다고. 만석닭강정이 엄청 유명하지만 닭을 안 먹는 관계로 패스하고, 30분을 기다려 막걸리 빵 두덩이를 샀다. 점심 먹었던 홍게라면 주인장께 막걸리빵이 왜 이리 인기냐고 물으니, 다른 곳보다 폭신하고 부드럽다나. 세상 폭신하고 부드러웠는데, 그냥 한 덩이만 사자. 식으니 그다지 특색있진 않았다. 한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체크아웃 후 중앙 시장이 아니라, 중앙 시장 후 체크인.
배도 부르고 이대로 집에 가는 건 아쉬워서 정원이 유명하다는 카페 '너울집'을 방문했다. 마침 고속도로 타기 전에 위치해서 돌아가기에도 좋다.
문앞 주차장은 몇자리 없고, 살짝 신흥교회 위로 돌아가면 넓은 주차장이 있다. 차에서 내려 가는 길에 너울집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옛구옥을 리모델링해서 카페를 연듯한데, 정원도 아기자기하니 추운데에도 밖에서 아아를 마시는 청춘들이 좀 있다. 얼어죽어도 간지가 중요하니까. 따뜻한 방안에서 정원을 보는 것도 좋은데, 꽃피는 봄이나 여름에는 더욱 좋을 곳이다. 이 곳의 시그니쳐인 크림라떼도 달콤하니 맛있다.
월요일 하루 휴가쓰고 일요일에 출발하니 차도 안 막히고 2박 3일 온 것보다 훨씬 충분히 쉰 느낌이다. 르네블루 호텔이 언제나 갈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진 않았지만, 이것저것 하지 않고 휴식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합리적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서서히 입소문이 나는 듯해서 예약은 더 힘들어지겠지만, 동해 바다를 볼 생각이 들때 앞으로도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시퀀스가 아닐까 싶다. 속초 중앙 시장에 들러 먹거리를 사고 르네블루에서 쉬다가 너울집 들러 차한잔하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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