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생의 올바른 예 - 이에 프로젝트
나오시마는 1900년대 초부터 미쯔비시의 구리제련소로 많은 인구를 유입하였던 곳이다. 하지만, 산업의 구조가 변화되면서 회사와 사람들은 떠났고, 남겨진 이들은 산업 폐기물과 황폐해진 삼림만 물려받게 된다. 1980년대 베네세하우스 북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섬의 일부를 매입하고 예술 박물관 건립을 추진한다(일각의 보도에서는 사회기부차원이라고 되어 있지만, 인구의 고령화를 고려할 신성장 동력으로 예술을 지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섬에 초특급호텔과 미술관을 3개나 짓는다니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평소 '예술을 알지 못하는 인재는 필요치 않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후쿠다케 회장의 의지에 따라 안도다다오에 아무런 제약을 주지 않고 도시 재생을 추진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과 나오시마 동사무소는 후쿠다케 회장을 찾아가 남아도는 집들을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후쿠다케 회장이 이를 승인하여 1998년 '집(이에)' 프로젝트는 시작된다. 베네세그룹의 작년 매출이 약 5조원 정도였는데, KTX 열차 만든 현대 로템과 유사한 수준. 이 정도 수준의 회사가 이런 일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
<지하까지 연결되어 있는 에도시대 신사에 광학유리계단을 설치하여 하늘과 땅을 결합하는 의미를 준 히로시 스기모토의 작품 Appropriate Portion>
이에 프로젝트는 나오시마의 7개 주택과 건물을 개량하여 진행되고 있으며, 인근 이누지마까지 프로젝트는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매 3년마다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를 인근의 섬들과 같이 열고 있다.
예술적 가치만이 이에 프로젝트의 전부는 아니다. 남은 3천 여명 주민들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지를 철저히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에 프로젝트의 가이드는 대체로 지역 주민들이 번갈아 맡고 있으며, 유흥 시설이나 상가는 통제되고 있었다. 주변은 정리되어 있었고 주민들은 아름답게 정원을 다듬어 마을과 길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된다.
연간 나오시마 방문객이 50만 정도 된다고 하고, 혼무라지구에도 그만큼 온다고 생각하면 1인당 3만원씩만 소비해도 150억 정도의 수익이 발생하게 되는데, 3천여명의 나오시마 인구를 고려하면 충분히 의미 있는 숫자가 된다. 실제, 카가와현의 많은 지역 중에서 나오시마 지역민들의 인당 수입이 가장 높다고 한다.
아파트와 상가만이 존재하는 국내 도시 개발 프로젝트도 서서히 재생에 초점을 맞추고 변화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다. 주변 상인들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했던 '서울로 7017', 소프트 역량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을의 특성만 고려했던 '창신동 봉제 골목', 이권만을 바라보고 제대로 된 홍보도 못하고 있는 '돈의문 박물관' 프로젝트까지 많은 재생 사업들이 투자만 이루어지고 성과는 요원해지고 있다. 구라시키나 나오시마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 재생에 있어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지점은 '이 곳이 얼마나 활기차질까?'가 아니라 '이 곳의 사람들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과도한 도시화에 대한 레지스탕스 - 지중미술관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 그룹 회장은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제목과 같이 정의하며, 일본을 망치고 있는 것은 도쿄라고 주장한다. 기업 활동의 목적은 문화이며 경제는 문화에 종속된다고 믿고 있다고 하는데, 단순한 수사는 아닌지 의심스럽긴 하다.
구리 제련소가 떠나면서 황폐해진 나오시마에 후쿠다케 회장(소이치로의 아버지)은 자연을 복원시키고 예술문화의 중심지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언뜻 듣기에도 과연 가능한 프로젝트일까 싶지만, 그는 스티브잡스적인 통찰이 있었는지, 프리츠커 수상자인 스타 건축 안도다다오에 이 일을 맡긴다(시작 당시에는 프리츠커 수상자는 아니었다).
호텔을 겸하고 있는 베네세하우스를 시작으로 안도다다오가 종종 존경을 말하는 이우환의 작품을 전시하는 이우환 미술관, 그리고 후쿠다케 회장이 좋아한다는 클라우드 모네의 작품을 중심으로,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전시한 지중미술관이 차례로 건립되는데, 독특한 건물 형태 때문에 지중미술관이 가장 유명하다.
다시 살아나고 있는 나오시마의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미술관을 지하에 건설하고 상단에는 형태만 남겼다고 하는데, 위 홈페이지의 모습은 하늘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나오시마 자체가 경관이 아주 빼어난 곳은 아니므로 납득이 충분하진 않다. 그리고 그 크기에 비해 전시 작품 수는 모네의 5작품을 비롯 10개 남짓으로 예술품 관람의 목적으로 방문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지중미술관의 가치는 건물의 형태나 미술작품 자체의 가치보다는, 미술과 건축의 상호 존중에 있다고 보는게 바람직하다. 안도 다다오는 입구를 '수련'의 빛을 떠 올릴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으며, 작품 자체도 인공 조명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 채광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월터 드 마리아와 제임스 터렐은 미술관 설계시부터 아예 방문하여 그들의 작품 전시 방법에 대해 상의할 정도였다고 하니, 지중 미술관의 경우 미술관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도다다오도 반신반의하며 나오시마의 일을 시작했지만, 다시 한번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다주며 나오시마에는 안도다다오 박물관도 건립된다.
* 국내에서도 안도 다다오의 건물들을 만날 수 있는데, 제주도의 본태 박물관은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나오시마의 호박
나오시마에는 익히 알려진 대로 현대 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가 디자인한 두 개의 호박이 있다. 미야노무라 항의 빨간 호박과 베네세 하우스 근처의 노란 호박. 하필 왜 여기에 호박이 있을까?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 그룹 회장은 이는 순전히 '우연'이라고 말한다.
"1994년 섬에서 열린 전시에 호박 작품이 처음 선보였죠. 그땐 참 이상하다 싶었는데, 바닷가에 놓인 호박을 보고 있자니 예술은 그것이 놓여지는 장소에 따라 감동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걸 깨닫게 됐지요."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위한 미술관을 기획했듯, 후쿠다케 회장은 예술품이 위치한 장소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은 인물이었다. 관광객들이 다카마쓰행 배를 타기 위해 미야노무라항으로 몰려왔을 때, 석양과 바다와 조화되는 빨간 호박은 그 장소성에 관한한 '우연'이 아니라면, 탁월한 식견이라 해야 옳다.
제주도 본태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 노란 호박 관련, 쿠사마 야요이의 땡땡이와 호박에 관한 집착은 이렇다.
"어느 날 테이블 위에 빨간 물방울 무늬로 수놓인 식탁보를 보았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천장으로 향했고 온 사방이 빨간 물방울 형태들로 번져갔다. 방안 가득, 나의 온 몸, 온 우주까지 빨간 물방울로 가득해진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나에게 삶을 영속시키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린다는 것은 나 자신을 파괴하는 어떤 열기이기도 했다”
"호박은 애교가 있고 굉장히 야성적이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는다.
나, 호박 너무 좋아
호박은 나에게는 어린시절부터 마음의 고향으로서 무한대의 정신성을 지니고 세계 속 인류들의 평화와 인간찬미에 기여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호박은 나에게는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호박은 말을 걸어준다.
호박, 호박, 호박
내 마음의 신성한 모습으로 세계의 전 인류가 살고있는 생에 대한 환희의 근원인 것이다.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
강박과 편집을 벗어나기 위해 예술을 시작했다는 쿠사마 야요이.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강박을 떨쳐버린 나오시마만큼 그의 호박이 어울리는 장소성도 흔하진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여행기는 위시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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