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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 탐색

[인간의 가치 탐색] 에바 일루즈, 에드가르 카바나스

by 마고커 2023. 3. 26.


윌스미스와 그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가 주연했던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실존 인물 크리스 가드너의 이야기를 다룬다. 의료기기를 팔던 영업사원이 노숙자가 되었다가, 우연한 기회로 주식 중개인 인턴이 되었다가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정식사원이 된다. 주인공역의 윌스미스는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같아서 크리스 가드너를 좋아한다고 오프라윈프리쇼에서 밝힌다. 

 

그런데, 정말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할까? 세계 다른 곳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크리스 가드너의 삶은 쉽게 발견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이자 사회 불평등도 심한 나라 중의 하나 아닌가!

 

감정, 문화, 자본주의 및 사회학의 교차점을 연구해 온 에바 일루즈와 에드가르 카바나스는 과연 행복과 자아실현이 우리가 궁극으로 다루어야 할 목표인지 질문한다.

 

에바일루즈 / 에드가르 카바나스

 

행복에의 추구를 지상과제로 삼는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은 북미 심리학회장을 지낸 마틴 셀리그먼에 의해 20세기말 불붙기 시작한다. '생물학적, 개인적, 관계적, 제도적, 문화적, 세계적 삶의 차원을 포함하는 여러 수준에서 긍정적인 인간 기능과 번영에 대한 과학적 연구'라는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갖고 있는 긍정심리학은, 극우를 지원하는 존 템플턴 재단부터 시작해서, 국립노화연구소, 코카콜라 등 각종 사회단체와 기업들로부터 수천만 달러를 지원받으며 주류 연구로 발돋움하게 된다. 긍정심리학은 대니얼카너먼으로 대표되는 행동경제학에도 지대한 영향(물론 카너먼이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만)을 미치기도 했으며, 총 행복 지수(GNH, Gross National Happiness)를 많은 나라에서 지표로 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틴 셀리그먼의 행복에 대한 정리는 아래와 같다.

 

 행복 = S(set, 유전적으로 정해진 행복의 범위)
            + V(Volitive, 자신의 행복을 개발하려는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활동) 
            + C(Circumstances,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

 

S는 50%나 차지하지만 천성적으로 낙천적인지 비관적인지를 나타내기에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C는 부의 상태나 안전, 사는 동네 등 환경적인 영향이지만 셀리그먼은 단지 10%에 불과하고, 40%를 차지하는 V(감사를 표현하기, 낙관주의를 개발하는 법, 스트레스 관리법 등)를 개선함으로써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바 일루즈와 에드가르 카바나스는 의문을 갖는다. 긍정 심리학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좋은 직업', '좋은 학교', '안전한 동네'를 갖고 싶어할까? 소득이 행복에 이바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할까? 더 공정한 소득이 생계에 허덕이는 수많은 빈곤 가정을 돕는 효과가 과연 없을까?

 

긍정적인 태도에 대한 주문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긍정심리학이 많은 영역을 지배하게 된 것은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로 이야기 된다. 외부 세계가 유독 팍팍하고 잔인하거나 불공정하게 나타날 때 '내면의 성채'로 후퇴가 일어난다고 말한 이사야 벌린의 이야기처럼 금융위기의 상처로부터 회복되지 않은 채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긍정심리학자들은 이를 부추기며, 개인주의 사회가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공허감 등 정신적, 신체적 이상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 모든 문제가 결국 개인의 쇠약한 정신 때문이며, 행복한 사람일수록 그런 문제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 '인디에어'에서 해고 컨설턴트 라이언은 실직한 밥에게 '당신이 꿈을 포기한 것이며, 좋아하는 요리를 다시 시작하면 행복해질것'이라고 말한다. 긍정심리학의 감정 기법들은 이와같이 노동자들에게 개인의 책임과 행복을 강조하면서 구조조정 논리를 강화했다. '긍정의 배신'의 작가 바바라 에런라이크는 행복은 시장 경제의 가장 잔인한 측면들을 정당화하고 온갖 오용에 구실을 만들어주고 미친 짓을 포장하는 쪽으로 무시무시하게 효과적인 이데올로기적 도구라고까지 언급한다.

 

긍정심리학자들은 에이브러함 매슬로우의 인본주의에 기반하면서도, 완전히 결을 같이하지 않는다. 매슬로우의 피라미드가 현대 사회 조직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으며, 오히려 피라미드를 뒤집은 '자아실현의 욕구'가 행복을 견인하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즉, 직업적 성공이 행복의 원인이 아니라, 행복은 직업적 성공의 필수 요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구글, 레고, 이케아 같은 업체들은 CHO(Chief Happiness Officer) 직책을 두어, 직원들의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즐거움, 평온, 해방감, 위안 등을 제공하는 정서적 상품 Emodities(Emotion + Commodities)들은 행복의 추구를 라이프스타일, 존재와 행동의 방식 그 자체를 독립적인 사고방식으로 정착시키고, 신자유주의 사회의 시민들을 진정한 'Psytizen'으로 만든다. '행복산업'과 상호작용하는 'Psytizen'은 '자기 감정 관리', '진정성', '자실현'의 세가지 심리적 성격으로 규정된다. 바로 긍정심리학자들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며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자기 감정 관리

 

셀리그먼은 '자제력을 꾸준히 훈련하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이 더 행복하고, 더 생산적이며, 더 성공을 많이 거둔다'고 말한다. 적합한 심리학적 기법들을 활용하기만 하면, 이 기제를 얼마든지 계발하고 개선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원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드는 '경로사고(Pathway Thinking)', 그 길로 나아갈 동기를 이끌어 내는 '의존사고(Agency Thinking)', 의존 사고를 감지해 내는 '목표 지향적 사고', 마지막으로 미래에 이로운 기대를 키울 수 있는 지 보여주는 개인적 변수인 '긍정적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기법들의 공통점은 1) 심리를 근본적으로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며, 2) 철저하게 일상생활의 실제를 겨냥하면서도, 그 측면들을 쉽게 이햏고 다스리고 조직하고 수정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3)적은 노력과 투자만으로 신속하게 얻을 수 있고 쉽게 측정하다고 결과를 약속하며, 4) 복잡한 분석을 끌어들이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실질적 조언으로 일상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장애물을 생산적 자극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바 일루즈에 따르면, 이 기법들은 1) 무의식을 완전히 묵살하고 2) 언어가 기술적이지 않아 '자기 치료'에 적합할 뿐이며 3) '자기 조절'이라는 말로 마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수월한 양 묘사한다. 

 

진정성

 

에이브러함 매슬로는 자기가 어떤 일에 적합한가를 발견하고 실행함으로써 개인적 차원에서 자기를 실현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긍정심리학자들은 이를 받아, '진실하게 행동하는 것', '가식을 전부 벗어던지는 것', '자신의 감정과 행위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확대하며, 창의성, 끈기, 자기 통제, 정서 지능, 시민다운 행동, 타인을 지도하는 능력 등을 강조한다.

 

그들은 개인이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재능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고 실행하게 도와주는 ISA(Individual Strength Assessment, 개인 감정 평가), VIA(Values in Action, 행동의 가치)와 같은 도구들을 개발해서 제공한다. 그리고, 지니고 잇는 자질의 상징적 가치를 강력한 정서적, 경제적 자산으로 삼으라고 주문한다.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

 

이는 회사가 직면한 어려움의 책임을 노동자들 자신이 져야한다고 노동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에도 이용될 수 있는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개인주의적 성공 신화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현재의 직업 세계를 정당화하기에 아주 편리한 개념이 된다.

 

자기실현 

 

성공은 당연히 기쁨과 만족을 안겨 주지만, 셀리그먼은 이에 더해 성공이 개인의 진적한 역량을 계발한 결과여야만 비로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면 행복과 쾌락을 혼동할 뿐이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잘해 나가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을 해 나가기 때문에 인생에서 잘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33%가 자기 실현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스웨덴이 단지 6%의 자기 실현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러시아보다 행복 순위가 앞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아라는 것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기 계발, 동기 부여, 실력 발휘의 추진력이 된다. 긍정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행복한 자아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나가고 자기 자신을 치료하기 때문에, '항구적 소비'라는 신자유주의 이상과 딱 맞아 떨어지게 된다. 결코 더 바랄 수 없을 정도로 역량있고, 건강하며, 행복한 사람은 없으며, 시장이 강하게 부추기는 것은 개인의 완벽성이 아니라 자기 개선 강박을 '평범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 뿐이다. 즉, 자기 실현 메시지는 '행복염려증' 환자들과, 시장만 이익을 취하는 구조를 양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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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행복 추구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부정적 감정보다 긍정적 감정이 인격 형성에 더 도움되고 사회 결속에 이바지한다는 행복학자들의 생각을 비판하는 것이다. 좌절, 시기, 가치 혼란, 증오 등도 개인의 사회생활과 집단 결속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나아가서는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남성에 대한 원한이 1960년대말 페미니스트 운동을 흥하게 했다. 

 

힘들고 부정적인 상황에서 긍정적 요소를 찾고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피한 역경을 마주치는 좋은 태도이고, 성찰과 반성을 거치기만 한다면 그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는 긍정성이 일종의 독재적 태도가 되어 불운과 무기력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하면서부터이다. 각자가 자기 고통을 책임져야 하는 세상에는 연민과 공감이 들어설 여지가 거의 없으며, 각자가 역경을 기회로 삼을 능력이 있다고 간주하므로 역경에 대해 불평할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로버트 노직은 '뒤뇌 신경을 자극해서 그 사람이 원하는 쾌감을 제공하는 기계'에 대한 사고 실험을 제안하며 질문을 던진다. '그 기계에 의지한 가상적 삶이 그보다 덜 즐거운 실제 삶보다 바랄만한 것인가?'. 삶을 혁신하는 도덕적 목표로 남아야 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정의와 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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