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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 여기저기/마곡 밖 여기저기

[중앙박물관] 조선의 승려 장인전

by 마고커 2022. 1. 23.


대형 박물관 안 가본지도 오래되서, 보고 싶던 전시회에 조용히 다녀왔다. 중앙박물관은 처음 개관할 때, 극장 용에서 발레 심청을 보고 발레는 나와 안 맞는다고 확신한 뒤로 가볼 생각조차 안했던 듯. 생각보다 규모도 커서 매우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다만 전시가 다양하지 않고 중복된 느낌이 있는 건 차츰 개선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전부터 관심은 있었으나, 작년에 강진 무위사를 다녀온 뒤로 좀 더 불교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침 중앙박물관에서 불상과 불화를 담당하던 승려 장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나 조선의 반차도를 보면, 당시 어떻게 이런 세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나 감탄하게 되는데, 불화들도 크기가 클 뿐 아니라 디테일도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림 그리는 승려가 따로 있었는데, 그들을 주로 화원이라고 불렀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승려들이 높은 신분을 갖을 수는 없었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며 불상과 불화를 복원하기 위한 승려 장인들의 수요는 많아지게 된다. 솜씨 있는 장인의 수가 많지 않았기에, 여러 지역의 장인들이 하나의 절에 모여 같이 작업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성화들이 주로 성서의 이야기를 다루듯, 당연하게도 탱화도 부처님의 이야기를 주로 그린다. 대중을 문맹화하며 성서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전달하려던 기독교에 비해, 탱화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무속과 결합하며 기복의 의미를 많이 담기도 했고, 명부와 정토의 세계까지 다루고 있으니 너무 방대하기도 하다. 석가나 약사여래, 지장보살에 비해 대세지여래,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등이 (불교도가 아닌)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못하고 헷갈리는 이유도 이때문은 아닐까. 불교에서 약사여래는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에 비해 높은 위치를 점유하지 못하지만, 병을 치유하는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 사찰에서 비교적 쉽게 발견되기도 한다. 국보인 송광사 화엄경변상도만 봐도,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그 수행 방법을 설명하는 그림인데, 위와 같이 아주 복잡하다. 만약 성화였다면, 석가가 각각을 대표하는 몇명만 데리고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불화는 보는 사람도 그리는 사람도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한다.

 

 

불화를 그리는 것도 일종의 수행이고, 스케일도 크기 때문에 이런 불편한 자세로 장시간 작업해야 한다. 밑그림을 그리고, 몇번씩 채색하고(대체로 식물에서 물감을 뽑아내기 때문에 여러번 덧칠해야한다), 그 위에 장식을 다시 그려낸다. 탱화 아래에 누가 그렸는지 남겨두는데, 이제껏 보아오면서 한번도 눈치채지 못했다. 성화가 개인에 의해 작업이 이루어는데 반해, 탱화는 주로 팀으로 작업된다는 것도 차이가 있다. 

 

그림과 조각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화승과 조각승으로 나뉜다고 한다. 작년에 무위사에서 거의 모든 불상은 목조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내 무식을 탓했었는데(그게 모두 금이었으면 벌써 누가 가져갔겠지!), 전시회에서는 그 작업 방법까지 살짝 알 수 있었다. 

 

 

불상이 부셔진 것이 아니라, 각각의 나무를 분리해서 작업하고 못이나 걸쇠로 합쳐 작업하게 된다고.. 물론, 나무 하나를 통으로 작업하는 경우도 있으나, 난이도도 올라가고 왜란 이후 작업량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대체로는 위와 같은 방법을 통했다고 한다. 나무를 합치고, 유약을 바른 후에 금칠을 하게 되면 불상이 완성된다. 

 

 

17세기의 이름난 조각승 단응이 아미타여래 삼존(아미타불, 대세지보살, 관음보살)과 아미타여래의 설법을 부조로 작업한 것으로, 매우 화려하다. 

 

 

불상 안에는 여러 보물이나 상징을 남겨두기도 한다. 경전을 넣기도 하고, 위와 같이 오보병이라 하여, 다섯가지의 색과 방위를 나타내는 문양을 만들어 넣어두기도 한다. 위의 청색을 예로 들자면, 가장 오른쪽은 생명의 씨앗을, 그리고 그 옆은 금강저라고 벼락을 나타내는 강력한 무기라고 한다. 

 

 

마지막에 전시된 불상들로 전시회측은 일부러 작자미상의 불상들을 강렬하게 배치함으로써, 앞으로 불상과 불화를 접하게 될 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대단한 보물이나 국보가 전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 중 이름난 사찰에 방문할 기회가 있을 때, 한번 더 유심히 작품들을 볼 기회를 만들어준다. 

 

 

마감 시간까지 조금 남아 상설전시되고 있는 사유의 방도 잠시 들렀다. 반가 사유상은 통일 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목상이나 석상이 아닌 청동불이다. 뼈대를 세운 후, 흙으로 불상을 만들고, 그 위에 밀랍을 바른다. 밀랍 위에 다시 흙을 바른 후 가열하게 되면, 밀랍은 녹아 내려가게 되는데, 그 사이에 청동을 붓는다. 청동이 굳은 후, 안과 밖의 흙을 덜어내면 청동불이 되는데, 반가사유상은 두께가 0.2~1cm 수준이라고 @.@ 6세기말에 만들어진 왼편의 반가사유상이 장식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지만, 7세기 초의 오른편 사유상에 더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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