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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부스러기

[매드맥스:분노의도로] 워보이, 페미니즘

by 마고커 2021. 10. 8.


자원을 둘러싼 대립으로 지구는 핵전쟁에 휩싸이게 되고 소수 인류만이 살아남는다. 매드맥스 시리즈는 그 전후를 다루는 것으로 1편은 오일쇼크와 대공항을 둘러싼 경찰 맥스('멜깁슨')과 폭주족과의 대결을, 2편 이후는 전쟁 후('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생존자들 간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4편 '분노의 도로'는 조지 밀러 감독이 무려 34년만에 내놓았는데, 더 일찍 나올 수도 있었지만 제작자들이 돈을 얼마든지 더 댈테니 하고 싶은 거 다하라고 해서 밀렸다는 후문. 그만큼 액션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분노의 도로'의 줄거리는 줄거리라 할 것도 없다. 임모탄의 부하 퓨리어스가 임모탄의 다섯 아내를 데리고 머더스랜드('Mother's Land')로 탈주한다. 이 와중에 피주머니(RH- O형이어서 누구에게나 수혈 가능) 맥스가 합류하게 되고, 황폐해진 머더스랜드 대신 출발했던 시타델(성채라는 뜻이다)로 돌아간다는 것이 전부다. 감독 조지밀러는 이 과정에서의 많은 사연('퓨리어스와 다섯 아내는 왜 탈출하나', '맥스는 어떻게 붙잡혔나' 등등)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누락하진 않는다), 액션에 집중한다. 

 

 

1편부터 액션에만 집중(미국 예고편에는 멜깁슨이 나오지도 않는다고)했던 조지밀러는 아이러니하게 액션 영화의 피로감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후반부 2~30분만의 액션만으로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영화가 대부분이지만, 2시간 가까이 액션으로 채우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촬영했다. 눈을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게 현란하게만 만드는 대신 액션이 일어나는 곳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과도한 CG를 사용하지 않고 아날로그적 스턴트(태양의 서커스 단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한다)로 유연함을 보여준다. 

 

매드맥스 시리즈는 '북두의 권'등 이후 나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예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워보이

 

워보이는 영화내 가장 특이한 캐릭터다. 원래 하얀지 아니면 하얗게 분장한건지 설명되지 않지만,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도 메이크업(?)이 지워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하얀 피부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 맞아 보인다. 강인한 육체를 갖고 있는 전사로 묘사되지만, 사실 그들은 방사능 피폭이 유전된 시한부(half-life) 인생이다. 임모탄의 두 아들도 마찬가지로 첫째는 신체적, 둘째는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어, 다섯명의 아내를 두면서까지 다른 아들을 얻고 싶어하는 임모탄의 욕구가 느껴진다. 

 

후반부 반전을 보여주는 워보이 녹스도 마찬가지다. 방사능의 결과로 나타난 물혹 두개에 애칭을 붙여줄 정도로 부작용과 시한부 삶은 그들에게 일반적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임모탄에게 천국(발할라)을 보장 받으려 한다. 유명한 밈 '기억해 줘'도 마찬가지다. 번역 때문에 Remember로 오해되는 그 대사의 원문은 'Witness Me', 'Witness You'다. 다른 워보이에게 인정받기 보다, 천국에 갔을 때 내 용맹한 행동을 증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피주머니 맥스를 죽이지 않고 계속 데리고 다니는 이유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매드맥스 속의 페미니즘

 

분노의 도로는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섯 아내를 구하는 것이 여성 사령관 퓨리어스고, 퓨리어스가 난관에 부딪혔을 때 도와주는 것도 할머니 전사들이다. 다른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내는 '보조자'가 여성의 역할이라면, '분노의 도로'에서는 퓨리어스가 전투와 대결을 이끌어가고, 오히려 맥스가 조언하는 위치에 있다. 임모탄에 붙잡힌 스플렌디드 역시 목숨을 연명하기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다 숨을 거둔다. 

 

70대의 조지밀러가 뼛속까지 페미니스트여서는 아닐 것이다. 임모탄의 다섯 아내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극작가 이브 앤슬러에게 조언을 얻으며 역할을 수정해 나갔고, 조지 밀러 역시 이브 앤슬러의 조언을 다수 받아들인다. 다른 남성들과 다르게 나이 들어도 '열린 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차이라고 할까. 다섯 아내가 '자비로움', '순진함' 등 여성의 다른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은 시련을 통해 두발로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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