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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부스러기

[판의 미로] 판, 오필리아

by 마고커 2021. 9. 12.


모아나 공주는 인간의 삶을 동경해서 지하왕국을 탈출해서 스페인 내전 직후의 오필리아로 다시 태어난다. 오필리아의 엄마 카르멘은 '어른만이 알 수 있는 이유'로 정부군의 비달대위와 결혼하지만, 오직 새로 태어날 아들만이 비달대위의 관심사다.

잔혹한 판타지로 소개되지만, 더 잔혹한 것은 오히려 현실 세계 인간의 삶이다. 내전은 끝났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배고프고 공화파의 잔당은 (오필리아가 동경하는) 숲에서 그 싸움을 이어간다. 오필리아는 새로 태어난 동생에게 영원한 삶을 주는 장미와 독을 품은 가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들은 공포와 죽음 고통만을 말할 뿐.영원한 삶의 약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그래서 매일 장미는 누구에게도 영생을 전하지 못하고 시들었으며결국 저 차디찬 산 꼭대기에서 모두에게 잊혀진 채 사라졌어.

 

 

미로와 세 개의 열쇠를 이야기하는 크리처 '판'의 모습은 꽤나 독창적이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그리스신화의 자연과 목축의 신을 변형해 차용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반인반수를 뜻하는 '사티로스' 중의 하나로 직립한 염소와 산양의 몸에 인간의 얼굴과 상반신을 한 형상이다. 일반적으로 헤르메스와 님프의 아들로 묘사되지만, 제우스와 님프의 아들이고 헤르메스가 오히려 아들이란 설도 있다.

그리스에서 아르카디아는 실재하는 숲이 우거진 지역이자, 이상향을 뜻하는 곳이기도 하다. 판은 그 아르카디아에서 섬겨졌으며 염소와 인간의 모습을 모두 갖고 있기에 '모든'이란 뜻의 'Pan'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님프 시링크스를 쫓아다녔지만 친구들은 오히려 시링크스를 갈대로 만들어 숨겨준다. 풀잎이라도 갖겠다며 판은 갈대잎으로 피리를 만드는데, 그게 바로 팬플룻의 유래. 공포와 혼란을 뜻하는 패닉, 그리고 팬더믹 모두 판에서 시작된 말이다. 

 

오필리아

 

스페인 내전 당시의 이야기인데, 오필리아라는 이름은 왠지 낯설다. 엄마 카르멘, 새아버지 비달 대위, 그리고 반군을 도와주는 메르세데스는 스페인식 이름을 갖고 있는데 오필리아가 스페인 사람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오필리아는 애초부터 스페인이 아닌 지하왕국 출신이다. '판'도 그리스에서 출발했듯이, '오필리아'도 그리스와 연관짓는 것이 맞아 보인다. 그리스어 ὠφέλεια에서 파생되었다고 알려졌으며, 우연찮게도 자코포 산나자로라는 시인의 '아르카디아(1504)'라는 시에서 처음 사용되어졌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델토로 감독의 의도적 작명이 아닐까 한다. 스페인보다도 영미권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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